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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우리법연구회 지부화(化) 저지는 당연


입력 2025.03.05 07:11 수정 2025.03.05 07:11        데스크 (desk@dailian.co.kr)

관례도 의회정치의 중요한 규범이다

이념적 신조와 법관 양심은 다른가

우파가 좌파 압도했던 3·1절 집회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헌법재판관 등이 지난 2월 25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심판 11차 변론에 착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최 대행은 마 후보자 임명에 대한 참석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 국무위원 모두가 ‘숙고’의 필요성에 동의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 최 대행은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와 관련,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한 대응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7일 최 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헌법재판소 구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우원식 국회의장의 ‘권한 침해 확인’ 청구를 인용했다. ‘헌법상의 임명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인데, 의무적 임명권이라면 헌법이 굳이 대통령에게 이 권한을 부여한 의의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무조건적 수용과 이행을 조건으로 한다는 논리는 난해하다. 일개 시민의 생각으로는 그렇다.

관례도 의회정치의 중요한 규범이다

더욱이 국회, 기실은 국회가 아니라 민주당이 대단히 무리하고 후안무치하게 재판관 추천권을 남용한 결과라는 점이 간과됐다. 헌재는 후보자 선정과정이 어떠했든 그건 국회 내의 문제라는 판단을 전제로 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결정 과정의 정당성은 의회정치의 근본적 가치다. 그간 국회 몫 3인 가운데 여야가 각각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합의로 추천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민주당이 2명의 추천권을 행사했다.


법에 합의하라는 규정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관례 관행 정치도의도 명문 규정에 버금가는 규범이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임은 관습헌법이므로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새로운 수도를 설정할 수는 없다고 결정했던 헌재가 의회정치의 상식과 관례를 무시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추천한 2명 모두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었고 같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법원장과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헌재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아무리 헌재가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이라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재판관을 4명이나 둘 수 있다는 것인가. 판사들이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한 사적 단체를 결성·유지했다는 것도 놀랄 일이지만 헌재가 그 출신 법관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기함(氣陷)할 지경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시작되자 그간 미루기만 하던 재판관 추천을 서둘렀고, 그 결과가 정계선·마은혁 추천이었다. 탄핵 인용을 위해 민주당이 헌재 구성을 주도하려 한 게 아니라면 무엇이었겠는가. 탄핵소추를 받아 직무가 정지된 한덕수 전 대행은 아예 3인 모두를 임명하지 않았지만, 최 대행은 그중 2명은 임명하고 마 후보자는 보류했다. 좌 편향의 재판관들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주도하는 것을 방지할 최소한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최 대행이 그런 생각을 가졌든 아니든). ‘국회의 헌재 구성권 침해’라고 하지만, 그게 국회의 배타적 권한이라면 그런 쪽으로 헌법을 고치는 게 순서 아닌가?


“최 대행은 국정을 수습할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헌정질서 파괴에 일조하고 있다. 헌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공직자 자격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마 후보자 임명을 보류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헌정질서 파괴’ 운운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사돈 남 말’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래(이 대표 당권 장악이래) 민주당은 29건이나 탄핵발의를 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행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27번이다. 정부의 발목을 묶어두겠다는 심사가 아니면 무엇이었겠는가. 그 기간 중 특검도 20차례 발의됐다. 정부가 요긴하다고 여겨서 올린 예산안은 모조리 삭감해 버렸다. 민주당의 목표가 ‘정권 붕괴’였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산 증거다.

이념적 신조와 법관 양심은 다른가

윤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아닌데도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해서 민주당은 그 즉시 ‘내란 수괴’로 몰아세우고 탄핵소추를 통해 직무를 정지시켰다. 헌법에 없는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것인데, 이를 핑계로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도 탄핵소추에 힘을 보탰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나 마찬가지로 여당이 버티었으면 이런 파국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적 위기 선언’ ‘국민에 대한 절박한 호소’로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게 헌법 어디에 규정돼 있느냐는 것인데, ‘국가 비상사태’는 통치권자의 판단 여하에 달린 것 아닌가? 21대, 22대 국회에서의 민주당 입법 전횡과 입법권 횡포는 정부를 기능 정지에 상태로 몰아갔다. 대통령으로서는 더 절박하게 그 위협을 느꼈을 법하다. 그게 헌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계엄선포를 내란으로 규정하는가?


민주당은 대통령을 하인이나 부하 취급하면서 신(神)과 같은 능력을 요구해왔다. 그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가 탄핵소추다. 헌법재판소도 그 같은 야당의 의도와 요구에 부응하듯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킬 궁리에 여념이 없는 듯한 분위기를 보인다. 자주색 법복을 갖춰 입고, 법대(法臺)에 높직이 앉아서 대통령을 피청구인(형사재판이라면 피고인)으로 앉혀두고 위의(威儀)를 뽐내는 재미에 빠져든 인상을 주기도 한다.


헌재는 지금 국민 16,394,815명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에 대한 파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심리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을 공격하며 구사했던 용어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었다. 국민 대표성이 없었으므로 선출된 권력처럼 행세하는 게 못마땅하다는 뜻이었을 터이다. 대통령과 입법부 구성원 외의 모든 국가 공직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그들이 자신의 이념적 신조에 따라 대통령을 밀어내고 말고 할 권한을 과시하고 있다. 그 권한의 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재판소법 제4조).


이때의 ‘양심’은 어디서 생겨나 어떻게 발현되는 것인가? 재판관의 ‘이념적 신조’는 양심의 바탕을 이루는가 아니면 배제되는가. 배제된다면 양심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자신의 이념 성향이 배제되는 양심이란 게 있을 수 있는가? 이념적으로 같은 신조를 지녔다고 누구나 판단할 법한 재판관이 8명의 재판관 가운데 3명을 차지한다면 그 판결의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우파가 좌파 압도했던 3·1절 집회

‘독립하여 심판’한다는데 ‘8대0의 결과’가 예측된다고들 하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소수의견이 나올 경우, 불복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8대0의 결정으로 불식시켰습니다.”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탄핵 선고에 앞서 그같이 말했다. 지금 다시 언론들에 그런 논리가 소개되고 있다. 헌법 제113조는 헌재의 탄핵 결정 요건을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소수의견이 불복종을 부추길 수 있다고 해서 ‘만장일치’의 결론을 내린다? 이런 인식이라면 헌재 재판관 정수를 9명으로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핑계 여하간에 이야말로 비민주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헌법재판관은 대법관에 비견될 만큼 높고 원숙하다고 인식되고 기대되는 법관이다. 소신을 꺾고 대세에 따라 만장일치의 요구에 휩쓸리는 수모를 당하고 싶기야 하겠는가.


촛불집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시 야간의 촛불과 횃불이 주는 위압감은 엄청났다. 집회 군중도 물론 많았다. 주요 언론들이 시위대 규모 부풀리기에 앞장섰다. 이들이 세종로, 태평로에 걸쳐 모인 군중 수를 100만→150만→200만→250만 명으로 늘려갔다. 그 공간에 모일 수 있는 군중 수는 어렵잖게 계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언론들은 ‘주최 측 추산’이라는 핑계로 수십에서 수백 배 튀겼다. 당시 우파의 탄핵 반대 집회도 엄청난 규모였지만 좌파의 선전·선동과 험악한 구호에 밀렸다.


그 덕에 한껏 재미를 봤던 민주당과 좌파 정치 세력들이 이번엔 주도권을 우파에 빼앗긴 분위기다. 탄핵 반대 집회가 찬성 집회보다 규모에서 10배 이상의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지난 3·1절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자신이 직접 당 지도부와 함께 참석해 진두지휘하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자 수가 우파의 탄핵 반대 집회 대비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주최 측 주장’이 아닌 ‘경찰 추산’으로 그랬다. 민심이 바뀌고 시대적 사조와 가치관도 바뀌는 법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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