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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傳] '역적' 연산군이 폭군이 된 이유


입력 2017.04.19 09:40 수정 2017.04.19 11:37        민교동 객원기자

MBC 월화드라마 '역적'서 김지석 역

폐비, 사치, 쾌락이 아닌 '능상척결'

MBC 월화드라마 '역적'서 김지석 역
폐비, 사치, 쾌락이 아닌 '능상척결'

MBC 월화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은 역사적인 기록인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MBC

반전이었다. 행록에 적힌 수귀단의 만행을 연산군(김지선)에게 알리면 왕이 자신들의 편이 돼 줄 것이라 믿었던 홍길동(윤균상)은 홍길현(심희섭)을 통해 자복해 궁으로 들어간다. 연산군을 만난 홍길동은 임금이 너무 높은 곳에 있어 까마득한 아래의 일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행록을 전한다. 행록을 통해 어두운 아래의 일을 알기만 한다면 왕이 모든 것을 바로 잡아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홍 씨 형제의 기대와 달리 연산군은 정반대 행보를 이어갔다. 송도환(안내상)을 불러들인 연산군을 행록을 건네며 화를 낸다. 그런데 홍길동이 바라는 방향이 아니다. 우선 행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한 연산군이 “내가 저들에게 능상척결의 본을 보이라 했지. 시시껄렁하게 저들 화풀이나 하라고 했소?”라고 말했다. 결국 행록에 기록된 내용은 비록 시시껄렁한 화풀이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것은 능상척결의 본을 보이기 위한 행위로 이를 지시한 사람이 연산군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 장면에서 행록에 적힌 두 개의 나무 목(木)자의 비밀이 풀린다. 이름 대신 나무 목자만 두 개가 적혀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는 송도환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의 성인 송(宋)자에 나무 목자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나무 목자는 연산군의 본명인 이융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성인 이(李)자에도 역시 나무 목자가 들어 있다. 이날 방송을 통해 행록에 적힌 나무 목자 두 개 가운데 하나의 주인공이 이융, 다시 말해 연산군이었음이 드러났다. 결국 행록의 가장 앞에 이름이 등장하는 연산군이 수귀단의 배후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지금까지의 드라마 흐름과는 잘 맞아 떨어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연산군은 송도환과도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닌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지난 10일 방송에서 연산군과 송도환의 대화와 행록의 비밀은 드라마에서 중요한 반전이 된 셈이다. 그렇지만 자칫 반전을 위한 억지로 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드라마 MBC 월화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은 역사적인 기록인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연산군일기’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홍길동 관련 기록에 소설 속 홍길동의 이야기를 혼합한 것. 참고로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홍길동 역시 연산군 시절의 실존인물 홍길동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유명한 폭군이다. 이미 드라마에서도 무오사화는 다뤄졌다. 무오사화는 세조를 비판한 김종직과 김일손의 조의제문이 그 중심이다. 조의제문은 계유정란을 통해 왕이 된 세조의 치명적인 약점을 비난한 글이다.

그런데 무오사화를 활용한 것은 오히려 홍길동 측이다. 무오사화를 활용해 충원군에게 짜릿한 복수에 성공하는 것. 이를 통해 연산군은 계유정란을 비판하는 조선 양반가의 선비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송도환이 이끄는 수귀단은 반상의 법도를 중시하며 이를 기반으로 조선 사회를 이끌고자 하는 무리다.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반상의 법도를 중시하는 수귀단은 연산군과 상당한 거리감을 두고 있는 조직처럼 보였다. 성종의 총애를 받았던 송도환과의 거리를 두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제 드라마는 갑자사화를 향해 가고 있다. 갑자사화의 뉘앙스는 이미 한 차례 등장한 바 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한 것 역시 홍길동의 무리였다. 조정학(박은석 분)이 잡아간 김덕형을 풀려나게 하기 위해 홍길동이 은근히 연산군에게 폐비의 일을 떠올리게 만든 것. ‘투기하고 간음한 아내는 죽여도 된다’는 양반들의 논리에 ‘죽은 아내가 죽어 참으로 남편을 배신했는지 알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 홍길현의 얘기는 연산군에게 또 다시 폐비를 떠올리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결국 김덕형은 풀려나고 이 일이 행록의 존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때만 해도 연산군은 행록을 쓰는 수귀단과는 반대 지점에 서 있었다. 또한 수귀단의 논리에 따르면 폐비를 사사한 성종의 행위는 정당한 것으로 오히려 갑자사화를 통해 연산군에게 척결될 대상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연산군은 행록 가장 앞에 이름이 등장하는 수귀단의 배후였다. 분명 지금까지 연산군은 홍길동과 홍길현 형제의 계산에서 벗어나지 않는 행보를 보여왔으며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온 것은 수귀단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수귀단의 배후였다는 점은 나름 충격적인 반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반전이 억지일까. 분명 폐비의 일만 놓고 보면 연산군은 행록에 적혀 있는 수귀단의 행위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억지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바로 이 부분이 드라마 ‘역적’의 노림수다.

‘역적’은 지금까지의 드라마가 그려온 연산군과는 전혀 다르게 그리고 있다. 사치를 좋아하고 여성 편력이 남다른 데다 사냥을 좋아하고 잔인한 왕이라는 부분에선 ‘역적’의 연산군과 기존의 연산군 사이에 차이가 크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의 연산군은 폐비의 일로 인해 힘겨워하며 비정상적인 태도로 일관한 왕처럼 그려진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역적’에서의 연산군은 그 결이 다르다. 이는 사학계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연산군을 대표하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역시 단순히 그가 패악스러운 왕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무오사화는 왕권 강화가 그 목적이었으며 갑자사화는 능상의 척결을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왕권 강화 수단이었다.

조의제문이 이유였지만 사실 무오사화는 성종이 그 위상을 크게 격상시킨 비판적 언론기관인 삼사(三司)를 견제하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담으로 보는 게 사학계의 일반적인 시선이다. 갑자사화 역시 단지 폐비 윤 씨의 사건만을 숙청의 원인으로 보기는 힘들다. 폐비 윤 씨 사건에 대한 보복이라면 훨씬 먼저 그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갑자사화 훨씬 이전부터 이미 그 사건을 알고 있었다. 드라마 ‘역적’에서도 그렇게 묘사되고 있다. 그 보다는 선종의 잘못된 판단을 저지하지 못해 현재의 국왕을 힘겹게 만든 대신들의 행동을 심각한 능상으로 본 연산군이 이런 능상을 척결하려 했으며 이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고 보는 것.

수귀단의 배후인 연산군은 송도환에게 행록을 건네며 “내가 저들에게 능상 척결의 본을 보이라 했지”라고 말한다. 수귀단의 존립 목적이 ‘능상 척결’임을 분명히 밝힌 것. 결국 송도환은 참봉부인 박 씨(서이숙 분)를 통해 폐비 윤 씨의 사건을 연산군에게 고하며 갑자사화를 불루 일으킨다.

‘능상’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의미하며 왕의 입장에선 대신들이 절대 복종하는 강력한 왕권을 의미한다. 또한 반상의 법도를 중시하는 조선 사회에선 명확한 계급 사회 구축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연산군과 홍길동의 대결 구도는 명확해진다. 홍길동은 양반을 죽인 씨종 아모개의 아들로 아모개는 능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아모개의 사상은 홍길동과 그 무리에게 그대로 이어져 능상보다는 백성들의 억울함 없는 삶을 추구한다. 반면 연산군은 능상 척결을 최고의 과제로 생각하는 왕이며 수귀단의 송도환은 늘 제자들에게 “위를 능멸하는 것은 악”이라고 가르치며 능상 척결을 중시해온 인물이다.

21회에서 홍길동과 연산군은 ‘능상 척결’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극명하게 갈라선다. 반전이라기보다는 이제야 비로소 이들의 대결 국면이 구체화된 것이다. 아모개가 조참봉(손종학)을 죽이는 사건부터 행록에서 비롯된 의적 홍 첨지 사건까지 20회 동안 이어진 내용이 바로 21회를 통해 드러나는 대결국면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었다.

23회, 24회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인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능상 척결’을 내세운 연산군의 폭정이 시작됐고 드디어 홍길동은 아기장수의 전설처럼 ‘역사’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홍길동의 모습은 이제부터이며 드라마 역시 지금부터가 진짜다.

스팟연예 기자 (spoten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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