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벵거 '브리티시 코어' 정책, 이젠 인정할 때
프렌치 커넥션 버리고 영 연방 선수들 적극 기용
성장세 멈추고 성적도 떨어져..이제라도 전환해야
아스날의 전성시대는 허버트 채프먼이 이끌던 1930년대와 아르센 벵거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를 꼽을 수 있다.
벵거 감독은 아스날 구단 역사상 최장수 감독이다. 1996년부터 21년 동안 팀을 이끌고 있다. 아스날은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을, 2005-06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중심에는 프렌치 커넥션이 있었다. 티에리 앙리, 로베르 피레, 패트릭 비에이라가 팀의 중심을 잡았다. 프레드릭 륭베리, 질베르투 실바, 데니스 베르캄프의 존재감도 대단했다. 주전에서 잉글랜드 출신은 솔 캠벨, 애슐리 콜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이 두 명은 최정상급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 페르시, 알렉산드르 흘렙, 토마시 로시츠키, 엠마뉘엘 아데바요르 등이 팀을 이끌었다. 비록 무관에 머물렀지만 아스날은 벵거 감독이 지향하는 특유의 패싱 플레이를 재현하며 팬들을 사로잡았다.
간혹 주전 라인업에서 단 한 명의 잉글랜드 국적 선수가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벵거 감독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잉글랜드 선수가 없는 잉글랜드 팀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
벵거 감독은 “축구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와 능력이다. 여권이 아니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아스날의 기조는 언제부턴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른바 ‘브리티시 코어’의 탄생이다. 2012년 시오 월콧, 잭 윌셔, 아론 램지,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키어런 깁스, 칼 젠킨슨과의 장기 계약 체결이 신호탄이었다. 영 연방 출신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 리빌딩에 돌입한 것이다.
이후에도 대니 웰벡, 칼럼 체임버스, 롭 홀딩 등의 유망주를 스쿼드에 추가시키며 브리티시 코어 정책을 고수했다.
한층 성장해야 할 이들은 모두 침체기를 겪고 있다. 절반 이상은 경쟁력을 잃고 입지가 좁아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스날은 알렉시스 산체스, 메수트 외질, 산티 카솔라, 페어 메르테자커, 로랑 코시엘니 등 외국인 선수들이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올 시즌에는 세아드 콜라시냑, 알렉상드르 라카제트가 가세했다.
그럼에도 벵거 감독은 고집스럽게 브리티시를 주전으로 활용하고 있다. 램지, 웰벡, 체임벌린은 여전히 벵거 감독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브리티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20일 영국 스토크 시티에 위치한 벳365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날과 스토크 시티의 ‘2017-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에서는 브리티시들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이날 아스날은 77%의 볼 점유율, 18개의 슈팅을 시도하며 스토크를 힘껏 몰아쳤다. 그러나 결과는 아스날의 0-1 패배였다.
웰벡은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 기회를 날려버렸다. 뛰어난 피지컬과 활동량, 침투 능력은 장점이지만 골 넣는 DNA가 없는 공격수다. 프리 헤더슛 찬스에서 머리가 아닌 어깨로 공을 건드렸고,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는 무게 중심을 잃으며 힘없는 슈팅을 시도했다.
3선 중앙 미드필더 램지는 지나치게 모험적인 플레이와 겉멋든 플레이를 일삼았다. 심지어 본분을 망각한 채 최전방에서 더 많은 움직임을 가져갔다.
램지와 함께 파트너로 나서는 그라니트 자카는 순발력과 수비능력이 떨어진다. 뛰어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보유하고 있지만 상대의 역습 상황에 노출되면 특유의 장점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램지와 달리 모하메드 엘네니가 커뮤니티 실드 첼시전, 리그 1라운드 레스터 시티전에서 미드필드 지역에 머무르며 빈 공간을 커버하고, 안정감을 불어넣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아스날은 기본적으로 수비 라인을 최대한 위로 끌어 올려 경기를 운영한다. 수비진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수비에 소홀한 채 밸런스를 무너뜨리며 항상 카운터 어택을 얻어맞고 일을 그르친 것이 제법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나마 체임벌린은 우수한 운동 능력과 빠른 스피드로 1 대 1 돌파를 통해 전진이 가능한 자원이다. 하지만 마무리가 실망스럽다. 슈팅, 크로스 모두 세밀함이 크게 떨어진다.
후반 33분 교체 투입된 월콧은 존재감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득점에만 치중하는 선수로 변모한지 오래다. 원투 패스를 통해 공간을 찾아 들어가고, 폭발력 있는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월콧은 2006년부터 아스날의 일원이었다. 11년이 지났고, 그의 나이는 어느덧 28살이다.
홀딩은 이번 스토크전에 결장했지만 지난 2경기에서 최악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다.
홈 그로운 정책으로 인해 브리티시를 아예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토트넘은 해리 케인, 에릭 다이어, 델리 알리, 대니 로즈, 카일 워커(올 여름 맨체스터 시티 이적) 등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좋은 성적을 올렸고, 이미 아스날을 앞질렀다.
반면 아스날은 빅6 가운데 가장 많은 1군 선수단(33명)을 보유하고 있다. 불 필요한 주급 지출이 너무 많다. 그래서 당장 정리가 시급하다. 정리 대상은 대부분 브리티시다.
처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벵거 감독은 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주급을 손에 쥐어줬기 때문이다. 특급 유망주를 잘 키운다는 것도 옛말이다. 아스날의 유스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특급 선수들은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아스날 팬들은 ‘벵거 아웃’을 외치며 혁신적인 변화를 원했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팬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벵거 감독과 2년 계약 연장을 제시했다.
올 여름이적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쓰길 원했는데 고작 2명을 영입하는데 머물렀다. 팬들은 ‘항상 똑같은 이야기(same old story)’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이적 시장은 10일 가량 남아있고, 아직 시즌 초반이라는 것이 위안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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