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증명 서류 제출 필수…무직자는 통장도 못 만드나
2015년부터 강화 규제 시행됐지만…소비자 불만 여전
새 통장을 만들기 위해 오랜만에 은행을 찾은 소비자들 대부분은 까다로워진 계좌 발급 조건에 당황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신분증 하나로 통장을 받았던 기억만 갖고 은행을 찾았다가는 온갖 서류 요청에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이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겠다며 정부가 계좌 개설 요건을 높이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로 인해 서민들 사이에서는 '통장 난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올해로 5년째를 맞은 통장 규제 정책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소득증명 서류 제출 필수…무직자는 통장도 못 만드나
2015년부터 강화 규제 시행됐지만…소비자 불만 여전
은행의 높아진 통장 문턱을 둘러싼 고객들의 불만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청년이나 무직자들은 신규 계좌를 발급 받기가 더욱 어려운 현실을 두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은행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장 만들기가 어려워진 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현장의 볼멘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은행에서 신규 계좌를 개설할 때 실제 소유자를 확인하고 정보 공개를 거부하면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등 강화된 통장 개설 절차가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은행 계좌 발급 시 금융거래목적확인서 작성이 의무화됐고 재직증명서와 사업자등록증 등 증빙 서류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정부가 통장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인 명분은 대포통장 방지다. 함부로 통장을 만들 수 없게 해 대포통장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관련 제도가 시행된 지 5년째를 맡고 있음에도 불평이 터져 나온다. 일부 범죄자를 막기 위해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되면서다. 아울러 높아진 규제의 효과보다 통장 난민을 양산하는 풍선효과 부작용이 더 크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새로운 통장을 만들기 어렵게 되면서 가장 많은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는 전업 주부와 학생, 은퇴자 등 소득이 없는 이들이다. 은행이 계좌 발급을 위한 기본 서류로 소득과 재직증명서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직장이 없는 고객들로서는 난감한 대목이다. 돈을 못 벌면 은행에서조차 푸대접을 받는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해당하는 고객들이 남들과 같은 일반 통장을 얻기 위해서는 각자의 사정에 맞춰 왜 계좌가 필요한지 소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른바 통장 고시라는 표현이 횡행했던 이유다. 물론 신분증만 가지고 개설이 가능한 통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은행 창구 100만원, ATM 인출·이체·전자금융거래 시 30만원으로 금액이 제한되는 금융거래 한도 계좌다.
이를 일반 통장으로 바꾸려면 정기적으로 빠져 나가는 요금들의 자동이체를 등록하거나 신용카드 대급 결제를 걸어야 한다. 무직자들의 통장 갖기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은행들은 공과금을 3개월 이상 자동이체하거나 신용카드 대금 이체를 걸어야 한도계좌를 일반 통장으로 전환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아예 일부 은행들은 이 같은 자동이체 요건을 채워오면 통장을 개설해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이 없는 이들 입장에서 다소 황당한 요구다. 더욱이 우대 금리 요건이 되는 자동이체 설정을 신규 계좌 개설 요건으로 내건다는 점에서 부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
소득이 있어도 과거에 비해 통장 만들기가 어려워졌긴 마찬가지다. 직장인은 신분증, 재직증명서와 함께 근로소득을 증명하기 위한 급여명세서나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준비해야 한다. 사업자 역시 신분증, 사업자등록증과 더불어 물품공급계약서나 세금계산서, 재무제표, 납세증명서 등을 통해 사업소득을 입증해야 새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다면 신분증, 급여명세표와 함께 근로계약서 상 고용주의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
서울에 있는 한 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은 "불법적인 통장을 막겠다는 제도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몇 년 전 기업에서 정년을 마치고 은퇴한 한 60대 남성은 "새 통장 만들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서류를 내야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못했다"며 "젊은 세대처럼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아 관련 문서를 준비하려면 여러 곳 발품을 팔아야 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고객 불만이 커지는데 대해 은행들은 내심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금융당국의 규제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냐는 토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장 개설 요건 강화가 대포통장을 막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지만 유일한 대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렇다고 민간 금융사가 이런 사안으로 금융당국의 기조에 반기를 들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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