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북 독자공간' 마련하겠다는 南에
"남북 접촉공간 완전 차단 첫 단계로 통신선 단절"
대남 공세수위 높아질 듯…"南 고립화 전략 시작"
'한반도 운전대'가 북한 손에 쥐여진 모양새다.
북한이 대북전단을 매개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나가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의제 주도는커녕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마저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9일 북한은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전면적인 남북 통신선 차단에 나섰다. 이번 통신선 차단 조치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결과다.
북한이 차단한 통신선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 연락선 △군부 사이의 동서해 통신연락선 △남북 통신 시험 연락망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 통신 연락선 등 총 4가지 통신선이다.
북한이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남한과의 모든 접촉공간을 완전히 격폐(차단)하는 첫 단계'로 통신망 단절 조치를 취한 만큼 향후 대남 공세 수위는 높아질 전망이다.
앞서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에서 대북전단 금지법 등을 요구하며 △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완전 철거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단계적으로 경고한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며 "특히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은 최악의 경우 군사적 대결 상황까지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남북 독자공간'을 마련하겠다며 북한 호응을 거듭 요구해온 한국 정부는 북한 강경 기조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김 부부장이 요구한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까지 수용한 상황이지만, 대남 공세만 하루하루 구체성을 띠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의 일방적 통신선 차단과 관련해 이렇다 할 유감 표명 없이 "남북 합의 준수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통미봉남의 재현…섣부른 양보 말아야"
여권 일각의 '희망적 사고'에 대한 우려도 제기돼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 조치를 '통미봉남'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하며, 대북 협력 의지를 지속 표명해온 한국 정부의 섣부른 양보를 우려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통화에서 "미국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게 북한의 최종 목표"라며 "북한의 한국 고립화 전략이 시작됐다. 개성공단 폐쇄와 군사합의 파기 등 김 부부장이 언급한 조치들이 차례로 이어지며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통화에서 북한이 문제를 제기한 대북전단 이슈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연관돼있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이 요구한 수준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결국 남북 관계가 경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긴 호흡으로 봐야지 여기서 양보를 시작하면 다음에 더 큰 양보를 해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북전단 문제를 대화 재개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여권 일각의 해석에 대해선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통화에서 북한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이 "남북 독자공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여권이) 해석을 잘못하고 있다.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불만 지피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최 부원장 역시 "희망 섞인 얘기에 불과하다"며 "북한은 말한 대로 행동하고 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