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펀드 투자에 따른 손실 정부가 떠안는 '정치적 설계'
건전성 관리할 금융당국이 '영업맨' 노릇 "무책임의 극치"
정부가 내놓은 '국민참여형 뉴딜펀드'가 금융권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금융권에서는 투자리스크를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 자체가 시장논리를 벗어난 포퓰리즘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초 출범 단계에서 정부여당이 약속한 '원금보장+3%수익률'처럼 투자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부분은 최종발표에서 수정됐지만, 여전히 "원금보장형"이라는 말로 금융시장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무엇보다 정책의 현실성을 냉정하게 따져 봐야할 경제관료는 물론 향후 건전성을 관리‧감독해야할 금융당국까지 정치적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선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브리핑에 나선 경제사령탑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금융당국 수장인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펀드 영업맨'으로 내세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실제 홍 부총리는 브리핑에서 "정부가 원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보장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와 성격을 가진다"고 말했고, 은 위원장은 "원금보장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사후적으로 원금이 보장될 수 있는 충분한 성격이 있다"고 뉴딜펀드를 홍보했다. 두 인사 모두 원금보장 효과를 약속한 것으로, 현행 자본시장법의 '원금보장 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에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뉴딜펀드가 원금보장을 추구한다는 은성수 위원장의 발언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뉴딜펀드가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금융감독을 총괄하며 금융권 건전성을 관리‧감독하는 분이 이런 펀드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 위원장이 금융투자상품의 판매를 위해 홍보에 앞장서는 것은 금융감독기구 수장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행위"라며 "홍 부총리도 뉴딜펀드가 시장원칙에 반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데, 경제관료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앞장서서 투자의 수익성과 안전성을 보장해주겠다며 불완전 판매를 선동한 격"이라고 꼬집었다.
뉴딜펀드가 '관제펀드'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자 금융위는 이례적으로 '뉴딜펀드 관련 7문7답' 해명자료를 통해 "과거 이명박 정부의 녹색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는 사업 실체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면서 "한국판 뉴딜은 차별화된 강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가 과거 관제펀드 실패의 원인으로 꼽은 '사업실체'는 뉴딜펀드도 모호하긴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뉴딜펀드가 손실을 혈세로 메우게 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민간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며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는 당초 뉴딜펀드에서 공적부문의 손실 흡수율이 35%라고 설명했다가 "펀드마다 위험부담이 다르게 적용된다"고 말을 바꿔 혼란을 낳기도 했다.
"건전성 경고등 들어왔는데, 금융당국은 '걱정말고 베팅하라' 부추기는 형국"
여전히 금융권에서 뉴딜펀드에 제기하는 의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정부가 제시한 '국고채 이자율'(0.92~1.54%)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뉴딜펀드의 투자 대상인 저탄소·녹색산업단지나 데이터·인공지능·태양광 사업 등 공공성이 강한 인프라 사업은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디지털 뉴딜의 경우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구조인데, 무턱대로 정부가 손실 책임을 보장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담보로 잡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권은 디지털 뉴딜과 신재생에너지 같은 그린 뉴딜 관련 기업 등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뉴딜펀드의 설계가 반시장적 요소를 담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손실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떠안는 구조여서 시장을 왜곡하고 금융권의 자율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투자는 개인이하고 손실은 혈세로 막는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5대 금융지주회사들이 향후 5년 간 약70조원을 대출‧투자할 뉴딜금융도 투자사업의 구체적 내용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 규모부터 정해놓은 설익은 정책에 가깝다. 금융당국은 이를 지원하는 금융사에 대해 건전성 규제를 완화해주겠다며 금융감독 원리의 근본에 배치되는 약속까지 내놨다. 코로나19 금융지원 등으로 건전성 관리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걱정말고 베팅 하라'고 부추긴 셈이다.
이에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을 향한 실망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세지는 '정치금융' 여파에 최소한의 방파제 역할을 해줘야할 금융당국이 오히려 정치권에 동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금융사 관계자는 "뉴딜펀드가 현재 발표된 내용대로 추진되면 금융투자가 부실화될 수 있고, 금융시장이 수익을 찾는 것이 아닌 정부가 수익을 강요하는 상황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장에선 "떠미는 정부여당 보다 못 말리는 금융당국이 더 밉다"는 얘기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