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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은 안 되는데 부담만…생보사 보장성 보험 딜레마


입력 2020.10.09 06:00 수정 2020.10.08 10:21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보장성 상품 관련 책임준비금 사상 첫 300조원 돌파

판매 실적은 지지부진…재무 압박 가중 속 악순환

생명보험사 보장성 상품 관련 책임준비금 적립액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보장성 상품 가입자들에게 훗날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기 위해 쌓아둔 돈이 최근 1년 새 20조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사상 처음으로 3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생명보험업계의 보장성 보험 영업은 예전만 못해지면서, 과거 계약에 따른 미래의 부담만 누적되는 형국이다. 보험사의 재무적 압박을 키우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보장성 상품 판매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생보사들에게 이 같은 악순환은 지속적인 이중고를 안길 전망이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국내 24개 생보사들의 보장성 보험 관련 책임준비금은 총 300조982억원으로 1년 전(283조924억원)보다 6.0%(17조58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책임준비금은 보험사가 향후 계약자에게 지급하기 위해 적립해 두는 보험금과 환급금, 배당금 등을 의미한다.


보장성 상품과 연계된 생보업계의 책임준비금이 3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보사별로 봐도 다소 정도에 차이는 있었지만 조사 대상 모든 곳들의 해당 금액이 일제히 증가 곡선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우선 생보업계 최대 사업자인 삼성생명의 보장성 보험 책임준비금은 같은 기간 85조642억원에서 89조5139억원으로 5.2%(4조4497억원)나 증가하며 90조원에 육박했다. 이어 한화생명 역시 42조7844억원에서 44조9387억원으로, 교보생명도 36조2921억원에서 37조9347억원으로 각각 5.0%(2조1543억원)와 4.5%(1조6426억원)씩 보장성 보험 책임준비금이 늘었다. 이밖에 NH농협생명(14조8102억원)·신한생명(13조9223억원)·오렌지라이프생명(12조5964억원)·푸르덴셜생명(11조6563억원) 등의 보장성 보험 책임준비금이 10조원 이상으로 많은 편이었다.


반면 생보업계의 보장성 상품 판매는 지지부진한 실정이었다. 결국 새 고객 유치에 난항을 겪는 와중, 기존 보유 계약에 따른 준비금 압박만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에서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소비자들의 경제적 사정까지 나빠지면서, 보험사들의 영업 환경은 위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실제로 조사 대상 생보사들이 올해 상반기 보장성 보험을 통해 거둔 초회보험료는 6425억원으로 전년 동기(6508억원) 대비 1.3%(83억원)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초회보험료는 고객이 보험에 가입한 뒤 처음 납입한 보험료로, 보험업계의 성장성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다. 신계약 건수로 봐도 생보업계의 보장성 상품 실적은 같은 기간 848만2607건에서 800만8938건으로 5.6%(47만3669건) 줄었다.


문제는 생보사들 입장에서 보장성 보험의 중요성이 최근 들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시행이 다가오는 IFRS17이 자리하고 있다. 2023년 IFRS17이 적용되면 현재 원가 기준인 보험사의 부채 평가는 시가 기준으로 바뀐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과거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경쟁적으로 판매했던 생보사들이 최근 들어 이를 자제하고, 대신 보장성 상품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내 기준금리가 처음으로 0%대까지 곤두박질친 현실은 생보사들에게 새로운 악재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시중 금리가 낮아질수록 보험사의 투자 효율은 악화가 불가피하다. 고객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잘 굴려 다시 돌려줘야 하는 사업 구조를 감안하면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준비금은 약정대로 쌓아야 하다 보니, 보험사가 느끼는 위기감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떨어진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어 한은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를 결정하면서 현재 기준금리는 0.50%로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IFRS17에 대한 대비만으로도 압박감이 상당하던 보험사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 기조 심화는 남다른 충격일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생보사들의 경우 신규 영업은커녕 보유 보험 계약에 대한 준비금을 적립하는 데에도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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