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개발 임박…정유업계 백신없는 '마지막' 겨울 기대
화물·여객 중심으로 한 연료유 수요 증가로 가동률 등 개선 기대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빠르게 속도를 내면서 정유업계가 반색하고 있다. 글로벌 이동 제한이 풀리게 되면 부진했던 연료유 수요가 회복돼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전문가들은 백신 출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라고 진단한다. 다만 백신 개발 완료 및 보급 시점까지는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만큼 단기간 내에 기대할 수 있는 수익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는 9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공동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이 임상3상에서 90% 이상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달 중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긴급 사용신청서를 제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여행·레저·항공업종이 들썩이고 있다. 그간 팬데믹 대유행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업종들이기 때문이다. 백신 안전성만 입증된다면 그동안 막혔던 여행 심리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실적 회복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정유업황 회복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간 항공유 등 석유제품 수요 저조로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5조원대의 영업적자를 기록,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3분기엔 재고평가이익으로 버텼지만 4분기는 최근 국제유가 상승으로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백신 보급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 화물을 중심으로 수송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여행 심리 회복으로 여객 수요 역시 정상화되면서 석유제품 회복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서 EIA(미국 에너지관리청)는 2021년 세계 석유 수요는 하루평균 9909만배럴로 올해 보다 6.8%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 피해'를 본 주요 업종들의 회복세가 가시화되고 세계 물동량이 덩달아 증가하면 석유제품 수요도 이 보다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석유제품 수요 회복은 국제유가 상승을 부추겨 정유사들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정제마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 등 비용을 뺀 가격으로, 통상 업계에서는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BEP)으로 판단한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올해 8월 이후 플러스로 돌아섰으나 손익분기점 보다 한참 못미치는 배럴당 1.6달러에 그치고 있다. 현재 수준의 정제마진으로는 팔수록 손해가 생기는 구조다.
코로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정유사들은 가동률 조정 등 생존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백신 보급이 내년 상반기로 앞당겨지면 정유사들은 '코로나 리스크'를 빨리 덜어낼 수 있게 된다. 향후 수요를 겨냥해 현재 70%대의 저조한 가동률도 개선시킬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내놓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인구가 내년 봄이나 여름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형성하고 나면 여행·숙박·식품 서비스 등 침체된 분야에서 빠른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올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3.9% 감소하고 내년에는 6% 성장할 것으로 봤다.
아울러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1조달러대 경기부양책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상화 정책이 추진되면 'V자' 반등은 가팔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다만 백신 효과에 대한 입증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은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화이자 임상시험 규모가 크지 않고 효능 분석기간까지의 시일도 짧다는 주장이다.
백신 입증이 된다고 하더라도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수 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80도 이하 '초저온 저장소'에 보관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규모 조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백신 개발 소식 자체는 고무적"이라며 "봉쇄령이 해제되고 이동이나 교역이 정상화되면 석유제품 수요는 자동으로 늘고 정유사들의 가동률도 보다 개선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만 "백신안정성 검증 및 접종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당장 정유사들이 서둘러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비 한 마리가 찾아왔다고 해서 봄이 왔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