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野 충분한 의사표시 보장"이라며
세계사에 유례없는 '여당도 함께 필리버스터'
필리버스터 제도 유래한 미국에도 전무한 일
이철규 8시간여 토론 끝내자 與 김병기 나서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의사표시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종결 신청을 하지 않겠다면서, 정작 소수당에 보장된 장치인 필리버스터를 함께 하겠다며 토론자까지 선정해 비상식적인 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0일 "필리버스터 법안에 대해 충분한 의사표시를 보장해달라는 야당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필리버스터에 돌입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토론 종결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국회법 제106조의2 5~6항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는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으로 종결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신청 24시간 이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종결을 의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등을 180명을 훌쩍 넘는 찬성으로 의결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의 국정원법 개정안 필리버스터를 24시간이 경과한 뒤에 종결을 시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 자체는 마치 야당의 발언권을 존중하는 듯 하지만 모순되는 행동이 뒤따르고 있어 의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도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함께 필리버스터를 요구하고 토론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날 '1번 타자'로 나선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8시간 45분간 이어진 뒤 자정 무렵 끝나자,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이후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홍익표 민주당 의원, 김웅 국민의힘 의원, 오기형 민주당 의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김경협 민주당 의원 순으로 필리버스터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는 다수당이 통과시키려는 법안에 대해 소수당의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수단으로 보장된 필리버스터 제도의 취지에 비춰봐도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다.
2016년 정의화 의장 땐 새누리 토론 가담 안해
민주당 등 범야권만 9일 동안 38명 의원 나서
여야와 다수·소수 바뀌자 문희상이 '상식파괴'
"아무리 좋은 제도도 민주당이 운영하면 엉망"
필리버스터 제도가 유래한 미국의 경우에도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다수당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소수당이 혼자 마이크를 잡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며 함께 필리버스터에 나서는 경우는 전무하다.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다수당이 발언대를 함께 잡겠다고 의사진행방해에 동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다수 여당이고 민주당이 소수 야당일 때는 우리 국회에서도 이같은 상식이 지켜졌다. 지난 2016년 정의화 국회의장 체제에서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때는 민주당 등 범야권 의원만 9일간 38명 발언대에 번갈아 올라섰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소수 야당의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수단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여야와 다수·소수가 바뀌자 달라졌다. 지난해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과 공수처법 필리버스터 때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허가에 따라 집권당이자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필리버스터에 끼어들었다.
이어 이번 필리버스터마저 여당 의원들이 야당의 의사표시를 방해하기 위해 토론에 끼어들면서 "필리버스터 법안에 대한 야당의 충분한 의사표시 보장 요구를 존중하겠다"는 입장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도 우리나라 민주당이 운영하면 엉망이 된다"며 "필리버스터 제도는 야당에게 주어진 무제한토론 권한인데, 여당도 토론에 들어오는 것으로 변질을 시켜놨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여당도 필리버스터를 하는 나라가 있느냐. 이런 식으로 국회의 모든 제도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우리 국회가 문희상 의장 때부터 완전히 망가졌다"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