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하는 목소리를 숨기래야 숨길 수 없는, 독보적 허스키 보이스를 지닌 가수다. 전설이지만 어려서 부른 원곡의 음역을 여전히 지킬 만큼 생생한 성대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연초, 자신의 명곡들을 새로 녹음한 음반을 들었는데 과거의 곡을 디지털 음원으로 바꾸기만 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장난삼아 주변 지인들에게 음원 파일을 들려주고 몇 살에 녹음한 것인지를 묻는 퀴즈를 냈는데 20대인지 30대인지를 놓고 답을 다투었을 뿐, 현재 시점에 다시 불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과 구분이 힘들 만큼 ‘살아있는 전설’의 목소리와 가창력이라는 의미다.
가수 이은하는 지난해 만났을 때 이에 대해 “제가 자랑할 거라곤, 제게 남아 있는 거라곤 노래, 이 목소리 하나예요”라고 말했다. 어쩐지 마음이 짠했다. 큰 박수 받아 마땅한 자랑거리인데, ‘남아 있는 거라곤’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10대 때부터 수많은 돈을 벌었건만 거듭된 아버지의 빚보증과 사업실패, 본인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실패로 흔적이 없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10억원의 빚이 남았다. 파산 신청, 간이 회생절차 진행, 법원의 회생 불가 판단으로 다시 파산절차 진행의 과정을 거쳐 결국 2017년 10월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져 빚 변제로부터 면책됐다.
빚에서는 벗어났지만, 신체 건강이 최악의 상태였다. 3년 전, 남동생이자 소속사 대표가 보여준 X-ray 사진을 보니 척추가 세로로 비스듬하게 분리됐고, 위쪽 척추가 아래쪽 척추를 짓누르며 미끄럼타듯 쓸려 내려오고 있었다. 말문이 막히는 건강 상태, 말이 안 되는 통증이 전해져 눈이 질끔 감겼다.
“1에서 10의 강도로 치면 9~10,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라고 병원에서 그러더라고요.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마약 진통제를 처방해 줘요, 그렇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드니까요. 그나마 (개인적으로는 약을 살 형편이 못 되는데) 국립암센터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지요.”
당시 이은하는 “제게 약보다 더 좋은 진통제가 있어요. 바로 노래 부를 수 있는 무대예요. 객석의 분들과 눈을 맞추며 노래하면 정말로 허리가, 다리가 하나도 안 아파요. 평소엔 걷기도 힘든데 몸을 살랑살랑 춤이 춰진다니까요”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감히 이런 표현을 쓰자면, 무대를 상상하며 말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가수 이은하는 그때 약속했다. 빚을 탕감해 주신 것은 재기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건강해지겠다, 살도 빼고 왕년의 댄스 가수답게 춤을 출 수 있도록 건강해지겠다, 건강해져서 대중 앞에 가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여기서 ‘살’이란, 척추분리증으로 인해 약을 먹으면서 스테이로이드 부작용으로 눈 깜짝할 새 30kg이 찐 것을 말한다. 아프니 약을 먹지 않을 수 없고 가수로서 여자로서 살은 빼야겠고, 딜레마에 빠진 상황, 병명으로는 쿠싱증후군이다.
그럼에도 이은하는 약속을 지켰다. 가능한, 꾸준한 운동과 노래연습 등의 활동으로 약을 대체하려고 노력했다. 2018년에는 대구에서 콘서트도 열고 이후에도 자신을 찾는 곳이라면 크든 작든 무대에 섰다. 안타깝게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지속으로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었다. 그래도 운동을 지속했고, 그 결과 16kg을 감량했다. 지난 9일 저녁 ‘퍼펙트 라이프’라는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감량 사실과 함께 “15kg을 더 빼고 노력 중”이라고 알렸다.
사연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이은하의 쿠싱증후군에 대해 걱정과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명곡을 선사한 가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자 사랑이다. 이러한 인간적 관심, 너무나 좋다. 하지만 어서 더 건강해져서, 노래할 수 있는 공연도 많아져서 ‘이은하’라고 했을 때 ‘쿠싱증후군’으로 연상되지 말고 노래와 무대로 조명받기를 바란다.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밤차’ ‘봄비’ ‘겨울 장미’ ‘당신께만’ ‘아리송해’ ‘돌이키지마’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이루다 말할 수 없이 제목만 들으면 생각나는 그 노래들을 한 자리에서 듣고 싶다.
제목에 ‘이은하의 뜨개질’이라고 적었다. 3년 전 파산이 받아들여지기 전 만났을 때, 불세출의 성대와 감당하기 힘든 빚만 남았던 그때, 전설이 실 뜨개 ‘워머’를 내밀었다. 그로부터 얼마 전, 한 종편 뉴스프로그램에서 가수 이은하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이템으로 다뤄졌고, 평소 팬이었던 마음을 담아 방송에 임했을 뿐인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뭘 주고 싶은데 줄 게 없어서, 내가 뜨개질을 좀 하거든, 손으로 짠 거니까 해요(받아요).”
왈칵 감동이 밀려왔다.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인데, 감사를 표해 주다니, 그것도 손수 실로 짜서 선물을 마련하다니. 몸 둘 바를 몰랐다. 감사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고, 사시사철 쓰고 있다. 목에 워머로 패션으로 두르고, 세수할 때 목에 있던 걸 머리로 올리면 헤어밴드가 되고, 멋 내기 귀마개도 된다. 색깔도 예쁘고 뜨개질 솜씨도 촘촘하니 좋아서 아직도 받을 때 그대로다. 매일 손끝에서 놓지 않고 쓰면서, 매일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꼭 완쾌하시고, 어서 ‘살아있는 전설’의 무대가 만들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