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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㉒] 금지된 사랑, 그 단맛과 쓴맛…캐롤 더 프롬


입력 2020.12.14 01:00 수정 2020.12.14 09:1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금지된 사랑. 영화 '캐롤' 스틸컷 ⓒCGV아트하우스 제공

극장에서 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더 프롬’(감독 라이언 머피, 제작, 넷플릭스, 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은 보수적 분위기가 팽배한 미국 인디애나주를 배경으로 여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고교 졸업파티(프롬) 참석에 어려움을 겪는 에마의 고난 극복기를 그린다. 심각한 드라마로 접근하기보다는 뮤지컬영화로 산뜻하게 터치했다. 2018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제73회 토니상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동명의 뮤지컬이 원작이다.


에마가 이야기 중심축이고 노래도 잘하고 밝은 에너지를 가진 조 엘런 펠먼이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지만, 노마와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얼리사 역시 오디션을 통해 아리아나 디보스가 낙점됐지만 두 배우의 이름은 영화에서 한참 뒤에나 소개된다. 그도 그럴 것이 에마를 도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제약 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졸업파티를 열어 주는 어른들 역에 메릴 스트립, 제임스 고든, 니콜 키드먼, 앤드류 라넬스, 키건 마이클 키 등 쟁쟁한 스타가 캐스팅됐기 때문이다.


영화 '더 프롬' 스틸컷. 에마(중앙 하늘색 바지정장)와 얼리사(보라색 드레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이 가운데 앞의 네 명은 브로드웨이 배우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새 뮤지컬을 공개했으나 ‘자아도취자’들이라는 언론의 혹평을 받자 여론 반전을 위해 ‘좋은 어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난관에 처한 고교생이 있는 인디애나 행을 택했고, 시작은 불순했으나 정말 좋은 어른이 되어 간다. 키건 마이클 키는 교장이지만 에마를 돕는 역이고, 이들 착한 어른들에 맞서 보수의 전통을 지키려는 학부모회장 역마저 유명배우 케리 워싱턴이 캐스팅됐다.


처음엔 우리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프롬, 졸업파티의 중요성이 깊이 다가오지 않는 데다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려 잠시 머쓱하지만 곧 즐거운 노래와 춤을 매개로 영화에 몰입된다. 특히나 영화 도입부, 세트장에 재현했다는 브로드웨이 거리와 극장 내 무대는 너무나 똑같아서 세트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메릴 스트립이 브로드웨이 스타였나 할 만큼, 4개월 맹연습으로 완성했다는 노래와 춤 그 압도적 카리스마는 나이를 잊게 한다. 제임스 고든과 앤드류 라넬스의 무대도 매력 만점이다.


왼쪽부터 배우 제임스 고든, 니콜 키드먼, 메릴 스티립, 앤드류 라넬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더 프롬’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얼리사와 춤추고 픈 에마의 소원 성취, 졸업파티 참석에도 규칙과 선을 강조하는 편협성을 깨트리는 데만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평생 코러스걸로 살아온 엔지(니콜 키드먼 분)의 대사가 있는 배역을 향한 꿈, 수줍음 많은 17세 소년 게이로 프롬에 참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모에게 외면당한 베리(제임스 고든 분)의 상처, 스타 배우지만 사랑에 실패하고 인간관계에 서툰 디디(메릴 스트립 분)와 훈훈한 인품을 지닌 교장의 만남, 남을 돕고 앞서서 지도하길 좋아하는 왕년의 TV스타 트렌트(앤드류 라넬스 분)가 자신에게 딱 맞는 길을 찾는 계기 등을 두루두루 보듬는다. 깊이는 덜하지만 아주 유쾌하고 뜻 있는 영화기에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운명의 장난 ⓒCGV아트하우스 제공

‘더 프롬’도 재미있지만, 넓고 얕은 터치의 영화를 보다 보면 깊은 감성의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달콤한 치즈 케이크를 한참 먹다 보면, 진한 풍미의 커피가 당기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해서 이어보면 좋은 영화가 ‘캐롤’(감독 토드 헤인즈, 수입 ㈜더쿱, 배급 CGV아트하우스)이다. ‘캐롤’은 동성애, 여자들의 사랑에 대해 복잡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고 깊이감 있게 접근한다.


‘캐롤’의 주인공은 한눈에 강한 끌림을 느낀 두 여인, 캐롤과 테리즈이다. 키스뿐인 ‘더 프롬’의 풋풋한 사랑에 비하면, 두 사람의 사랑은 거부할 수 없이 농염하고 인생을 뒤흔들 만큼 치명적이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캐롤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의 묵직하게 지배하는 연기, 테레즈를 연기한 루니 마라의 ‘사랑의 원형’을 보여 주는 아름답고 순수한 연기다.


캐롤로 빛나는 케이트 블란쳇 ⓒCGV아트하우스 제공

더욱 흥미로운 설정은 ‘더 프롬’에서 동성애는 타고난 성향이고 바꿀 수 없이 제멋대로 뛰는 심장이다. 하지만 ‘캐롤’에서는 좀 다르다. 캐롤은 이성과 결혼한 유부녀이고 딸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욱 사랑하는 엄마다.


남편은 캐롤의 오랜 친구 에비(사라 폴슨 분)와의 관계를 의심하지만, 두 사람은 진한 우정의 관계다. 남편에 맞서 자신의 동성애 관계를 부인하지만, 딸의 양육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 같은 이혼소송을 생각해서라도 동성애에 관심 둘 여력이 전혀 없건만, 운명은 저 밑바닥의 근본적 욕망을 일깨운다. 테레즈와 마주치고야 말고, 운명을 알아보고야 만 것이다.


아름답고 순순한 사랑, 루니 마라 ⓒCGV아트하우스 제공

테레즈 역시 남자친구가 있고, 있어 왔는데, 어쩐지 늘 삐걱거린다. 애초 짝이 아닌 톱니를 맞추는 곤란함을 느낀다. 자신이 일하는 백화점 매장에 장갑을 놓고 간 캐롤, 장갑을 찾아 주며 인연이 된 두 사람은 우의를 나누지만 어쩌지 못하는 끌림 역시 알고 있다.


누르면 누를수록 폭발하는 힘이 큰 법, 두 사람은 모든 걸 팽개치고 떠난다.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딱 맞는 짝을 만나, 흡족하고도 만족스러운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테레즈는 캐롤을 통해 사람을, 세상을 그리고 사랑을 새로 배운다. 영원할 수 없는 불안한 도피를 멈춰 세우는 건 역시 캐롤의 현실이다. 홀연히 돌아간 캐롤, 에비를 통해 테레즈를 살피게 했으나 이번엔 테레즈가 선을 긋고 돌아선다. 이대로 두 연인은 금지된 사랑을 끝내고 남들 눈에 보통으로 보이는, 자신에게는 더 없이 건조한 사막의 삶으로 돌아갈까.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다시 한 번의 용기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의 마지막 장면, 케이트 블란챗과 루니 마라의 눈빛, 그 눈빛의 교감을 잊을 수 없다. 지금 어떤 이유로든, 꼭 동성애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가 금지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묵언으로 전하는 깊은 울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 하나만 좋아도 영원히 사랑스럽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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