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투기수요 차단, 불로소득 환수’ 원칙 주장하지만
선거 위해 연일 ‘규제 완화 카드’...“신뢰성 떨어져”
여야 서울시장 후보들의 ‘재건축·재개발 완화’ 언급에 이어 이번엔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투기수요 차단, 불로소득 환수’ 원칙을 주장하며 민간 재건축·재개발 불가, 양도세 강화 등 규제정책을 펼쳐왔다.
뒤늦은 규제완화 정책이 오는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민심’을 잡기 위한 선거용 정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런데 양도세 완화론은 여권 내에서도 합의가 되지 않은 채 정부와 여당에서 제각각의 발언을 쏟아내며 혼란을 주고 있다.
일단 이슈를 던져놓고 민심을 살피는 ‘간 보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체계적인 정책 청사진을 그리지 못한 채 여권 지도자 간 ‘정책 엇박자’가 어김없이 나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 홍남기·김진표 “양도세 완화”, 민주당 “검토된 바 없다”
지난 10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새로운 주택을 신규로 공급하기 위한 정책 결정과 기존 주택을 다주택자가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다 공급대책으로 강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비상경제대책본부장인 김진표 의원은 최근 당 지도부에 ‘양도세 중과 유예나 한시적 감면 등 다주택자가 집을 팔 수 있는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내용의 정책건의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발언을 두고 부동산 업계에서는 정부가 올해 6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점을 연기하거나 세율을 감면하는 것이 아니냐고 분석했다.
그러나 관련 보도가 쏟아진 다음 날인 11일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는 논의한 적도 없고 논의할 계획도 없다”며 “부동산 시장에 교란을 줄 수 있는 발언은 자제해야 하며 자칫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으니 잘못된 발언에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누리꾼들은 “엇박자 정책이 한두번도 아니고, 이러니 정책의 신뢰성이 깨진다는 것”이라며 “정책 문제는 지도부 내에서 결론을 내리고 확실한 상태에서 발표해야 하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 세금 완화, 부동산정책 근간 흔드는 것이지만...선거 앞두고 ‘간보기?’
여권의 이번 양도세 완화 이슈는 선거를 앞두고 ‘일단 간보기로 던져진 사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완화는 그간 실행된 정부 부동산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지만, 선거를 위해 부동산 민심을 모른척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권 서울시장 후보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재건축·재개발 완화’를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지난해 7·10대책을 통해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예고했다. 다주택자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해 투기수요를 원천 차단하려는 고강도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 대책이다.
대책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는 다주택자가 주택을 팔 때, 양도세 중과세율이 ‘기본세율 + 10~20%포인트’에서 ‘기본세율 + 20~30%포인트’로 인상된다. 2년 미만 보유한 주택이나 조합원 입주권을 팔 때 양도세율도 현행 40%에서 최대 70%까지 강화된다.
정부는 부동산 세금을 강화하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시장에서는 ‘버티기’ 혹은 ‘증여’로 대응했다.
한국부동산원에 집계를 보면 지난해 1~11월 전국 주택 증여건수는 13만4642건으로 전년(11만0847) 건수를 훌쩍 넘었다. 이는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다주택자들이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물량이 어차피 신통치 않으니, 세금 완화라는 근사한 포장으로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 부적절한 타이밍, 지키지 못할 약속...싸늘한 시장반응
시장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의 또 다른 누리꾼은 “부동산을 광풍으로 몰아넣고 이제서야 공급대책과 양도세 완화를 한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탄했다.
현재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상승률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지금 와서 내놓는 정책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리 만무하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정책 효과를 낼 ‘타이밍’조차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양도세를 완화하더라도, 현격한 수준이 아니라면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양도세 감면폭이 적다면 당연히 매도물량이 크게 증가하기 어렵고 반대로 양도세 감면폭이 유의미하게 크다면 정부가 지목했던 투기세력의 차익실현을 해주는 결과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설사 양도세 완화가 시장에서 매물유도라는 효과를 낸다 하더라도, 양도세 완화를 실시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약속 자체를 못 믿겠다는 불신론도 나온다.
지난 4·15 총선거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1주택자 종부세 완화’가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당시 이낙연 공동상임선대위원장과 이인영 원내대표는 강남3구 유세 현장에서 “1가구 1주택 장기보유 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완화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