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작성 전후로 김정은 위원장 '원전 건설' 강조
"국제 정세, 남북 관계 고려해 추진해야 하는데
정부가 대북 원전 건설 섣불리 추진한 감 있어"
29일 북한 원전 건설 자료 삭제 보도 직후 통일부가 "2018년 이후 남북 협력사업으로 북한 지역 원전 건설을 추진한 사례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언행을 주목해볼 때 관련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문건 작성 시점 전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차례에 걸쳐 원전의 중요성을 직접 언급한 사실이 포착됐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 미국·EU·일본 등 공조하에 공식적으로 추진되던 KEDO 원전 사업과 달리, 문재인 정부가 국민 모르게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점에서 국정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8일 SBS가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북한 원전 관련 파일 17개 중 생성 날짜가 적힌 6개 파일 모두 2018년 5월 2일~15일 작성됐다. 이 시기는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과 2차 남북정상회담 사이다.
주목할 점은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 간 정상회담 직후 2019년 신년사에서 "올해 경제 건설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절박한 과업의 하나는 전력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라며 원전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조·수력과 풍력, 원자력 발전 능력을 조성해나가며 도·시·군에서 자기 지역의 다양한 에너지 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이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원전 건설에 대한 김 위원장의 긍정적 견해는 문건 작성 이전에도 발견된다. 2016년 5월 7차 노동당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풍부한 동력자원에 의거하는 전력생산기지들을 대대적으로 세워야 한다"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동시에 밀고 나가 전력 문제 해결의 전망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심각한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에 원전은 매력적인 방안이다. 원료가 되는 우라늄 매장량이 풍부한 것도 북한이 원전을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미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집권 중이던 1950년대부터 원자력 연구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농축 기술까지 사실상 완성했다.
이러한 정황은 산업부가 북한에 할 수 있는 중대 제안의 하나로 북한 원전 건설 추진을 검토했을 개연성이 있어 보이는 이유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019년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이 원자력발전소를 언급한 데 대해 비핵화 진전이 우선이라고 단서를 달면서도 "앞으로 비핵화 협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유의미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통일부가 "2018년 이후 북한 지역 원전 건설을 추진한 사례는 없다"고 일축했지만, 이번 산업부의 북한 원전 건설 자료 삭제 역시 이전까지 극구 부인해온 사안임을 감안하면, 통일부 내부에서도 관련 논의나 문서화가 이미 진전됐거나 관계부처 합동으로 추진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정부의 행보는 김영삼 정부에 의해 한 차례 추진된 적 있던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KEDO)'와 사뭇 대조된다. KEDO사업의 핵심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조건으로 북한 금호지구에 1000MW급 경수로 원전 2기를 건설해주는 내용이다. KEDO는 미국‧EU·일본·한국 등 4개국 정부로 구성하고 한국전력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등 공식화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원전 건설 추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적 발표 없이 철저한 은폐하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의혹을 키우고 있다. 오히려 탈원전 정책과 대조된 행보라는 지적보다도 남한 국민 모르게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지적이 더 큰 논란을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대북경수로 사업을 주도했던 변준연 전 한전 부사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KEDO사업은 북측이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한다는 의혹이 일면서 2005년 11월에 결국 폐기됐다"며 "대북 원전 사업은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하는데 정부가 섣불리 추진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