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이제 우린 북한이야.”…미얀마의 자조와 문재인 정권


입력 2021.02.07 08:30 수정 2021.02.07 08:12        데스크 (desk@dailian.co.kr)

미얀마엔 아웅산 수지, 러시아엔 나발니, 중국과 북한엔? 없다

中 공산당 100주년 축하와 北 원전 추진 의혹 접하는 착잡함...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왼쪽), 알렉세이 나발니 러시아 전 진보당 대표. ⓒ 데일리안 DB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왼쪽), 알렉세이 나발니 러시아 전 진보당 대표. ⓒ 데일리안 DB

우리 세대에겐 버마라는 국명(國名)이 더 친숙한 미얀마에 또다시 군사 쿠데타가 났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필자의 첫 반응은 “아이고, 이 사람들아….”라는 탄식이었다.


그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면 미얀마엔 모욕으로 들리겠지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민주와 풍요, 무엇보다 언론 자유와 법치주의 수준을 높여 온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과 그 투쟁에 참여한 시민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정권 들어 더욱 노골화한 그들의 변절(變節)과 독재 정권들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가 미얀마 쿠데타 풍경을 전하는 이 나라의 저명한 기자의 글과 오버랩되며 착잡한 상념을 일으켰다. 그 기자의 글에 북한(‘Now we are North Korea.’라는 문장에서)이란 말이 등장해서다.


미얀마는 한국의 현대사와 비슷하면서도 1980년 후반 극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이 갈림길이 미얀마를 오늘날 아시아의 최빈국(最貧國)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 나라의 이전 쿠데타가 발생한 해는 1990년이다. 1962년(한국의 5.16보다 1년 뒤다) 네 윈(Ne Win) 장군이 군사 통치의 서막을 올린 이래 두 번째였다. 2년 전인 1988년(한국의 직선제 실시 1년 뒤다) 학생들의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나서. 1980년 광주민주화투쟁 후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것과 비슷하다.


2008년 새 헌법 채택 이후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보다 20년 늦은 민주화의 봄을 맞았다. 아웅산 수지(Daw 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당에 국민들이 몰표를 던지며 문민 정부도 세웠다. 그 봄은 그러나 완전하진 않았다. 군부가 여전히 권력을 합헌적(合憲的)으로 공유, 정부 부처 요직과 의회 의석의 25%를 자동으로 언제나 갖게 돼 있었으며 수많은 국영기업이 군유화(軍有化)됐다.


공식 지위는 국가 고문이나 실질적인 정상(頂上)이었던 수지는 이 ‘조건부 민주화’라도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이 차선이라고 보고 군부 대항마(對抗馬)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총사령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위태로운 동거를 계속해 왔다.


흘라잉의 로힝야(Rohingya) 인종 청소를 옹호해 국제 사회로부터 훈장 박탈 등 큰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동거는 수지의 국민연맹 당의 지난 11월 총선 압승(80% 이상 지지)으로 인한 개헌 의석 확보와 흘라잉의 퇴임(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으나 오는 7월 65세가 됨) 임박으로 깨졌다. 그가 개헌과 퇴임 후 처벌을 피하려고 선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미얀마는 그래서 암울한 겨울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일시적으로는 그렇겠지만, 그 겨울은 길지 않을 것으로 외신은 희망하고 있다. 미얀마에는 아웅산 수지가 있고(누구 말대로 보유국이다), 군부 내에서도 수지 정당 지지가 압도적인 것으로 선거 결과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SNS 시대이다. 군부가 페이스북 등을 통제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따사로운 봄볕 맛을 본 사람들에게 탱크로 민주 정권을 뒤집는 쿠데타야말로 ‘구시대의 유물’(대통령 문재인이 북원추 의혹과 관련해 이적행위 주장하는 야당에 한 말)이기 때문이다.


30년 만에 무장한 군인들이 수도 양곤 거리에 다시 등장한 모습을 친척 집으로 가 하루 동안 자조적(自嘲的)으로 바라보며 쓴 로이터 소속 여기자(Aye Min Thant)의 뉴욕 타임스 기고 글에서 그것이 느껴진다. 이 기자는 미국 코넬 대학에서 석사를 했으며 퓰리처 상(국제 보도 부문)을 받은 사람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북한이야’라고 이모가 말했다. 나는 옛날의, 고립된 미얀마로 차에 실려 옮겨진 듯한 아득한 느낌이 든다. 60대 중반의 이모부는 생애 세 번째 쿠데타를 겪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10년 동안 자유로웠지. 어떻게 또다시 그리 살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네’라고 그는 말했다. SNS로 약속된 밤 8시가 되자 이웃 사람들이 발코니로 나와 냄비와 프라이팬, 찜통, 양동이를 두드렸다. 우리는 투쟁 없이 포기하진 않을 거라면서.”


미얀마는 아웅산 수지 보유국이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응집력과 지속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나라 쿠데타와 함께 날아오는 소식은 러시아의 반(反) 푸틴 지도자로 독살 위기에서 살아난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SNS 투쟁이다. 러시아도 나발니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가석방 조건 위반이란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은 법정에서 수백만 명의 팔로워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푸틴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독살자(毒殺者)에 불과한 인물이 되어. 그가 나라 전체를 (나처럼) 가둬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곧 봄이 올 것만 같은, 리더의 웅변이다. 이 나라에 SNS 민주화 운동이 이렇게 거침없이 전개되는 한 푸틴 독재의 끝은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독재국가들이 있으니 바로 중국과 북한이다. 중국은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과 최근 위구르 족에 대한 만행 보도에서 보듯 잔인무도(殘忍無道)한 깡패 국가이고 북한은 세계가 다 아는 이하동문(以下同文)이다.


이 두 나라는 어찌 된 일인지 대한민국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매우 우호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 자기네 나라 독재에는 처절히 항거했던 사람들이 세운 정권인데, 남의 나라 독재에는 놀랍도록 관대하다. 아이러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얼마 전 중국 주석 시진핑과의 통화에서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청와대 발표가 아닌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 1면 보도로 한국 국민들이 알게 됐다.


문재인은 친 중국(공산당) 반미국(제국주의) 내용으로 쓰인 1970~80년대 대학생 의식화(意識化) 교과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내 인생의 책’, ‘이 땅의 국민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라고 2017년 대선 직전에 공언한 바 있다.


이 정권은 비판자들로부터 종북(從北), 친북(親北) 표찰이 붙여져 있다. 북원추(北原推, 북한에 원전 건설을 해주는 계획 검토) 의혹은 북한에 뭘 해주고만 싶어 하는 586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의 경사(傾斜)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단면이다.


문재인 정부는 왜 아웅산 수지도, 나발니도 보유할 꿈조차 꾸지 못하는 세계적 두 불리(Bully, 불량배) 국가, 중국과 북한 편을 그토록 들고 싶어 하는 것일까?


ⓒ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정기수 칼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