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식 핵공유 등 전술핵 도입 관련 입장 '변화'
2017년 "검토 안해"→2021년 "판단한 게 없다"
'힘의 우위'가 文 정부 안보 독트린이라면
보다 책임 있는 입장 표명 있어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발언에 주저함이 없다. 어떤 질문도 감정동요 없이 맞받는다.
그런 정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말문이 막혔다. 그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를 포함한 전술핵 도입 관련 질의에 11초 동안 침묵했다. 눈을 질끈 감고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 장관은 장고 끝에 "학자적 검토는 가능하다"면서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러한 선택지까지 검토하는 게 적절한지 판단한 게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 장관은 한반도 위기 상황이 고조됐던 지난 2017년 8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자격으로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했을 당시 같은 질문을 받고 "전술핵 배치 문제를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3년 6개월여 만에 사실상 입장이 바뀐 것이다.
현재 독일·이탈리아 등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과 핵무기 공유 협정을 맺고 미국의 신형 전술핵(B61)을 각국 전투기에 탑재하는 훈련을 진행 중이다. 평시에는 미국이 핵무기 통제권을 갖지만, 유사시 각국이 전술핵을 자국 전투기에 탑재해 실전 투입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정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안보 독트린을 △한반도 평화 정착 △'힘의 우위'를 통한 평화 성취 등 두 가지로 요약했다. 그러면서 문 정부가 전임 보수 정권보다 훨씬 많은 국방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을 상대로 확실한 안보 우위를 점해 평화의 근간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실제로 군 당국은 북한이 실전 배치한 기존 미사일 체계를 충분히 방어하고 반격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하나 북한이 최근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무기와 개발을 예고한 전술핵까지 실전배치할 경우, 한반도 힘의 우위는 북한에 기울 가능성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제8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핵무기 기반의 무력통일 전략을 수립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지만, 북한이 지난해 6월 도입한 대남 대적(對敵)사업 기조를 '철회'하지 않았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외교적 관여를 통해 한반도 교착 국면을 돌파하고 북한 비핵화 진전을 이루겠다는 문 정부 '플랜A'를 모르지 않는다. 한데 한미일 북핵 공조가 삐걱대고 북한이 무력도발을 감행하는 '플랜B' 가능성도 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당장 한일 '전화벨'은 정 장관 취임 2주가 지나도록 울리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한반도 정세가 '3년 전 봄날'로 되돌아가길 바랄지 모른다. 하지만 정반대 상황이 한반도에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정 장관의 '11초 침묵'에 반영돼있다고 본다.
나토식 핵공유를 포함한 전술핵 도입안은 힘의 우위에 기초한 평화 성취라는 문 정부 안보 독트린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졌던 공직자로서, 대한민국 외교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정 장관의 보다 책임 있고 명확한 입장 표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