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사저 문제, 스스로 정치쟁점으로 불붙여
'노무현 봉하' 끌어들여 지지자 트라우마 자극
'변창흠 악재' 가리면서 신임투표로 전환 시도
"정치적 잔수로 받아들여지면 역풍 불 수도"
서울시장·부산시장이 걸린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재보선에 '올인' 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례적인 'SNS 정치'를 통해 본인의 사저를 스스로 정치쟁점으로 불붙이면서, 재보선을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로 전환하는 시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오후 SNS에서 'LH 투기 사태' 와중에 자신의 경남 양산 사저 농지 매입 문제가 거론되자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 하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야권을 향해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반격을 가했다.
'반격'이라고는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다소 생뚱맞다는 반응이다. 이날 경남 양산이 지역구인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실의 자료를 바탕으로 중앙일보가 문 대통령 사저 부지의 농지전용허가·형질변경 사실을 보도하긴 했지만, 정치권에서 비중 있게 거론되지는 않았다. 오전에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도 문 대통령 처남의 그린벨트 LH 수용에 따른 시세차익만 잠깐 언급됐을 뿐, 문 대통령 사저 문제는 언급이 없었다.
야권이 딱히 선거 쟁점으로 삼아 총공세에 나섰던 것도 아닌데 문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선거 시기'를 운운하며 쟁점화를 했다. 그 방식 또한 국민소통수석이나 대변인을 통한 간접적 입장 표명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대통령 본인의 SNS 계정을 통해서 직접 입장을 표명했다. 이를 놓고 문 대통령이 스스로 '사저 논란'을 전면으로 끌어올리면서, 재보선의 성격을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띄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SNS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며, 굳이 자신의 사저 문제를 노 전 대통령과 결부시켰다. 현 야권이 과거 노 전 대통령의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아방궁'이라 공격한 점과 노 전 대통령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던 점을 상기시켜, 전통적 여권 지지층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표 결집을 시도했다는 분석이다.
집권 5년차를 앞두고 치러지는 4·7 재보선은 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돼 '심판 선거'의 분위기가 원래부터 강했던데다 최근 'LH 투기 사태'라는 돌발 악재까지 터지며 판세가 집권 세력에게 불리해졌다.
뉴스1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7~8일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야권 단일 후보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나설 경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46.2% 대 38.7%로 오차범위 밖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나설 경우 박 후보에게 43.1% 대 39.3%로 오차범위 안에서 각각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집권 세력이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모두 패배하면 정국은 급격히 차기 대권 경쟁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문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지게 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여권의 대권주자들마저 문 대통령과 거리두기 또는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문 대통령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LH 투기 사태'라는 악재를 수습하기는 어렵다. 판세의 불리함을 인식하고 레임덕 방지를 위해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4·7 재·보궐선거는 내달 2일부터 이틀간 사전투표가 실시된다. 이날은 사전투표일로부터 정확히 3주 전이 되는 날이다. 3주 사이에 문 대통령 사저 논란과 관련해 어떤 결론이 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11년 영농 경력'을 주장하며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 농지를 매입한 것 자체가 이미 탈법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이날 SNS에서 "모든 절차는 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자신의 '사저 논란'을 전면에 내세워 야권의 공세를 유도하는 한편, 다른 악재는 가리려는 것"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해 '핍박받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연출함으로써 집권 세력 지지층 사이에서 '지켜야 한다'는 정서를 불러일으켜 투표소로 끌어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야권은 이러한 의도를 알더라도 대통령이 깔아놓은 '판'으로 휘말려들어갈 개연성이 높다. 대통령이 "그 정도 하라"고 한 것은 역으로 '들어오라'는 수신호다. 야권은 공세를 펼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장 국민의힘 김재원 전 의원, 이준석 서울 노원병 당협위원장, 김용태 경기 광명을 당협위원장 등이 문 대통령 'SNS 정치' 비판에 나서면서, 대통령 엄호에 나선 극렬 지지자들과 온라인 공간에서 뒤엉켰다.
이에 따라 4·7 재보선 정국은 진영 결집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정책 대결이 실종되면서 '진흙탕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SNS 승부수'가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전수조사 결과 청와대에서는 투기 의혹자가 '제로'라는 발표로 민심의 시선이 싸늘한데, 청와대가 정치적 잔수에만 밝다는 듯한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오히려 국민의 냉소를 불러일으키면서 '심판 선거'의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