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다른 문 대통령의 말
공적 문제 침묵, 개인 문제 분개
오‧안 두 후보, 통 큰 결단 내려야
국민의힘 오세훈, 국민의당 안철수 두 사람이 후보단일화만 한다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복잡한 선거 공학을 들이댈 것도 없다. 상식의 눈으로도 예견할 수가 있다. 야권이 이기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낸 것부터가 잘못이다. 2015년 10월 경남 고성군수 보궐선거 유세 때 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역설했다. 새누리당 출신 전임 군수의 귀책 사유로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만큼 그 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 십억원 선거 비용을 고성군민들이 부담해야 한다며 새누리당을 공격했다.
그때그때 다른 문 대통령의 말
“어떻게 책임집니까? 후보 내지 말아야죠. 우리 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우리 당 귀책 사유로 치러지는 지역(경남 사천 시의원 보궐선거)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책임지는 것이죠. 새누리당은 고성에서 무책임하게 또 다시 후보를 내놓고 또 표를 찍어달라고 합니다. 우리 고성군민들 우롱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그 전달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잘못으로 치러지는 재·보궐선거 때는 해당 선거구에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당헌에 명시하는 데 앞장섰다. 그 자랑을 호기롭게 한 것이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던가. 이번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의 귀책 사유로 치러지게 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여비서를 장기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기 직전 자살했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작년 4·15총선이 끝나기를 기다려(아마도), 8일 후인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여직원 성추행 사실을 밝힌 후 자리를 내놨다.
당연히 민주당은 후보 공천을 포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당헌을 고쳐버렸다. 그리고는 후보를 냈을 뿐 아니라 코로나 지원을 빙자한 대규모 자금 살포, 부산 가덕도 신국제공항 건설을 표 낚기용 미끼로 던졌다. 이런 비겁하고 졸렬한 행태를 꾸짖으며 제지했어야 할 문 대통령이 오히려 주도하는 양상이었다.
그는 지난달 19일 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4차 재난 지원금 지급 대상과 규모 등을 둘러싼 정부·정치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서 5차 지원금 지급 구상을 밝혔다.
“코로나19를 벗어나게 되면 국민 위로금, 국민 사기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최대한 넓고 두텁게 지원돼야 할 것”이라는 당부까지 곁들였다. 그래야 국민의 기대감이 높아질 것이므로!
지난달 25일에는 부산에서 화려한 선거 지원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행사에 참석하고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했다. 배를 타고 시찰하면서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여당의 선거를 지원한 예는 없었다. 문 대통령이 믿는 것은 무엇일까?
공적 문제 침묵, 개인 문제 분개
민주당의 후보들도 부끄러움을 모르기는 대통령·당 지도부와 난형난제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고 했다. 위에서 물불 안 가리고 두 도시의 시장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하는데 당사자인 후보들이 양심을 지키며 얌전히 있겠는가. 야당과 그 후보들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에 걸쳐 살았던 이종오의 ≪후흑학≫ 키워드가 ‘면후심흑(面厚心黑)’이다. 두꺼운 낯과 시커먼 마음을 가져야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한다는 말인데 문 정권의 실세·유력자라는 사람들이야말로 ‘후흑술’에 통달한 듯하다.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 하시지요. 좀스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문 대통령이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야권에서 자신의 양산 자택 부지와 관련한 의혹들을 제기한 데 대한 반박이었다. 자기 돈으로 사기는 했지만 처분할 수 없는 토지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를 예로 들기도 했다. 그간 정부 내에서 벌어진 온갖 갈등 대립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던 대통령이 자신의 문제가 제기되자 참지 못하고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문투나 용어가 대통령답지 못하다 해서 말이 많다. 이런 식의 표현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몰랐을까? 그 땅을 투기용으로 샀다고 해서 이는 논란이 아니다. 농지를 아주 억지스럽게 매입해서 형질변경을 통해 대지로 만들었다는 점이 ‘대통령직 찬스’ 아니냐는 것이다. ‘영농경험 11년’도 아귀가 안 맞는 허위 기재라는 지적도 많다.
이에 대한 해명은 없이 ‘좀스럽다’고 했다. 질문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은 ‘도를 넘은 데다 좀스런 사람’으로 매도돼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개발 대상지 땅 투기 의혹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는 와중이다. 그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입장이나 인식 표명은 않으면서 자신의 땅에 대한 의혹은 못 참겠다고 나선 모습이 한심해 보인다. 보궐선거에서 야권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는 요인 중에 이 장면도 물론 포함된다. 만약 여당 후보가 당선되면 정권 측 오만과 국정 전횡을 저지할 고삐는 영영 풀려버리고 만다.
오·안 두 후보, 통 큰 결단 내려야
야권이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민이 그간 보고 들은 바가 있다. 주권자로서 계속 참고 이해하는 것이 능사일 수 없다. 그게 장기화되면 인내를 강요당하게 된다. 권력의 야수적 속성은 그간 정치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국민이야말로 민주정치의 안정과 성숙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야권의 승리 기반은 만들어진 셈이다.
문제는 야권 후보들의 난립 위험성이다. 부산은 괜찮지만 서울은 ‘후보 단일화’라는 당위의 명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분열하면 민주당 후보에게 당선증을 헌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은 분명히 인식할 테지만 그것만으로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 국민들은 여야 간의 정권교체를 의심치 않았다. 당시 5공 정권은 국민에 대한 항복문서, 즉 ‘6·29 선언’까지 내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승리였다. 정권교체의 결정적 기회를 맞고서도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탓이었다. 김영삼-김대중 간 후보단일화가 이뤄졌더라면 김종필도 출마를 포기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다 출마하게 되면서 유력주자 4인의 경쟁이 되었다. 김대중 후보 측은 ‘4자 필승론’을 들고 나왔었다. 물론 출마의 명분을 살리기 위한 주먹구구·탁상공론이었다.
오 후보와 안 후보가 게임의 룰을 결정하면 된다. 이를 실무협상에 넘기면 갈수록 틈이 벌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통 큰 결단’이란 바로 이런 때 필요하다. 두 후보가 윈-윈하는 방안은,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출마로 정권 쟁취를 위한 교두보 구축에 실패할 때 두 사람은 그 책임을 혹독하게 추궁 당하게 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긴 말이 필요 없다. 합치면 이기고 나뉘면 진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