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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의사들 ①] "점심에 소주 반 병, 응급실서 와인 진료"…병원 특유의 폐쇄성으로 그저 '쉬쉬'


입력 2021.03.26 10:17 수정 2021.03.27 14:36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주치의 음주 수술로 뱃속 아들 잃어"…국민청원 등장에 여론 '부글부글'

SNS에 '근무 중 음주사실' 당당하게 올리는 '젊은 의사들'

2015년~2020년 음주의료행위 적발된 의사 7명…은밀한 공간 수술실서 감춰진 사례 훨씬 많을 것

(병원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술에 취한 채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의 음주 의료행위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잇따르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지만 관련 의료 단체들의 반발과 이들의 눈치를 보는 국회에서 법적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병원 현장에서는 여전히 음주 의료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 산부인과에서 딸·아들 쌍둥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술을 마신 주치의 A씨가 제왕절개 수술을 맡아 아들이 숨졌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주치의의 음주 수술로 뱃속 아기를 잃은 엄마'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당시 A씨가 급히 수술실에 들어갔고, 코를 찌를 듯한 술 냄새를 풍겼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수술이 끝나고 비틀거리며 나오는 A씨에게 현장에서 경찰관이 음주측정을 해보니 만취 상태였다"며 "A씨는 멀리 지방에서 라이딩을 하고 여흥으로 술을 먹었다며 '그래요 한잔 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찰은 A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038% 상태에서 운전했다고 판단해 음주 운전 혐의로 입건했다. 이어 경찰은 의료사고 여부 조사에 나섰으나 병원 측은 청원인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2020년 음주의료행위 의사 자격정지 현황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의사들의 음주 의료행위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 간 음주의료행위 의사 자격정지 내용' 자료를 보면,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음주 의료행위로 적발된 의사는 7명이다.


일례로 지난해 구로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는 진료 의사가 술을 마시고 횡설수설한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의사는 출동한 경찰에게 "점심에 소주 반 병 가량을 마시고 진료했다"며 순순히 음주 진료행위를 시인했고, 경찰은 즉각 음주측정기로 음주 상태를 확인했다.


2019년 6월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일부가 당직 근무 중에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고 진료를 했다는 의혹이 전해져 큰 파문이 일었다. 특히 이 가운데 한 전공의는 생후 일주일 된 미숙아에게 실수로 적정량의 100배에 달하는 인슐린을 투입해 쇼크를 일으켰다는 증언까지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심각성을 더 했다.


심지어 이들은 당직 근무 중 SNS에 "곱창과 맥주를 시켜 먹어 얼굴이 너무 빨갛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일부 환자들이 '의사한테 술 냄새가 난다'고 지적했다는 전직 근무자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또 같은 해 송파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는 "의사가 응급실에서 와인을 먹고 환자를 진료했다. 음주측정기를 가지고 와 달라"고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음주 측정기로 의사의 음주 상태를 확인했다.


2017년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속 전공의들이 당직실에서 수술복과 가운을 입은 채 치킨과 맥주를 먹는 사진이 세간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특히 이들은 당직 근무 중 메신저에 '밖에 나가 맥주를 사 온다', '음주로 얼굴이 빨개져 보호자 면담이 걱정스럽다'고 적기도 했다.


2014년엔 인천 남동구 소재 한 대형병원의 전공의가 술에 취한 채 3세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봉합 수술까지 집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아이는 턱 부위가 찢어질 정도로 심하게 다쳤지만, 문제의 의사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는 치료 전 소독을 하지 않고 위생 장갑도 끼지 않은 채 환자의 상처를 대강 3바늘 정도 꿰매고 수술을 끝냈다. 술 냄새를 맡은 환자의 부모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음주측정기를 통해 음주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주치의의 음주수술로 뱃속 아기를 잃은 엄마입니다' 청원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문제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례들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음주 의료행위 사례가 더욱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술실은 병원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이면서 접근 가능한 인력이 매우 한정되는 공간으로 꼽힌다.


따라서 의사의 잘못된 의료행위를 감시할 눈들도 별로 없을 뿐더러 서로 잘못된 행위를 감싸주는 병원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의료계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의료계가 워낙 좁고 한번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다시는 발 붙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해 잘못된 관행에 대한 내부고발이 어렵다"며 "일부 몰상식한 의사들의 행태에 내부적으론 불만이 높아도 외부에는 발설하지 말자는 게 병원의 문화"라고 토로했다.


이 간호사는 또 "치료가 급한 환자와 가족들이 병원에 왔는데, 설사 의사한테서 술 냄새가 나더라도 그 자리에서 술을 마셨느냐고 캐묻고 따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환자 개개인의 의료피해 사례가 (환자 측 동의 없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지적한 뒤 "수술실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된 의료행위를 저질러도 의사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증인도 증거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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