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영향권 비껴가, 안전진단 규제 완화 언급 '환영'
"집값 상승시 충분히 규제한다는 의지, 전략적으로 명분 쌓은 것"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건 관심도 없을걸요? 오히려 여기 사람들은 오세훈 시장이 대통령께 우리 아파트(시범아파트)를 꼭 방문해 보라고 요청했다는 게 더 눈에 들어오죠. 적어도 실상은 안다는 거잖아요."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일원 시범아파트에서 만난 한 주민의 대답이다. 앞서 21일 서울시는 압구정과 여의도, 목동, 성수 등 대규모 정비사업 예정 단지들이 밀집한 4개 지역, 54개 아파트 단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일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부동산 과열 분위기가 감지됨에 따라 서울시가 선제적으로 투기수요 차단에 돌입한 모습이다. 오는 27일 발효되며 지정기간은 1년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상가·토지 등을 거래할 때 관할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거용 토지의 경우 2년 실거주 목적으로만 이용 가능하며 매매나 임대는 금지된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도 불가능하다.
준공 50년째 접어든 여의도 시범아파트도 토지거래허가제 적용을 받게 됐다. 일찍이 조합이 설립된 이곳 단지는 2년 실거주 요건 없이도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단지로 꼽힌다.
이 때문에 해당 규제 발효 전 매수 문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단지 분위기는 조용했다. 이미 실수요자 중심으로 어느 정도 시장재편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시범아파트 내 상가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실거주 목적이 아니면 살 수 없으니까 약간의 영향은 있겠지만 일단 매물이 있어야 투기세력이든 뭐든 들어오지 않겠냐"라며 "물건이 많은데 팔리지도 않으면 매도자들도 동요하겠지만 이미 팔고 나갈 사람들은 다 나갔고 남은 사람들은 팔 생각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미 서울시장 선거 전에 거래는 다 이뤄졌다"며 "매수 문의가 빗발친다는 데 와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물도 없고 문의 전화도 없고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소식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주민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소식보다 같은 날 오세훈 시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시범아파트를 언급하며 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언급한 것에 더 관심을 두는 모습이었다.
시범아파트 입주 시점부터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이미 리모델링을 해서 당장 사는 데 불편한 건 없지만 지어진 지 오래되다 보니 안전 문제 등이 염려가 된다"라며 "이런 점을 오 시장이 알고 문 대통령에게 직접 규제 완화를 부탁했다는 게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천천히라도 좋으니 오 시장이 지금 의지를 꺾지 않고 규제를 풀어주길 바란다"며 "당장 우리는 이렇게 살더라도 아들한테 물려줄 때는 새 아파트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어릴 때부터 30년 넘게 시범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여기 주민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며 "오 시장이 대통령 앞에서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다시 확인시켜준 만큼 이제 구체적인 방법들이 나와주면 더 믿음이 갈 것 같다"고 바랐다.
전문가들은 오세훈 시장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향후 정부와의 재건축 규제 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자칫 구별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했더라면 재건축 사업장이 아닌데도 피해를 보는 곳이 생길 수 있는데 오 시장이 단지별로 지정했다는 점은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집값이 올라가면 충분히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중앙정부에 보여줌으로써 재건축 규제를 풀어달라는 명분을 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정부와 서울시가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상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전략적으로 보여줬다"라며 "정부와의 줄다리기에서 일단 오 시장이 우선권을 챙겼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