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예산, 출산 보다는 청년·노인 등 일반 복지에 주로 쓰여…보건 의료분야 지원 항상 제한적"
“분만실은 생명시설, 적자 나도 ‘건강한 적자’…국가 등 공공 부문이 책임지고 적자 지원해야”
“정부, 출산 관련 장기적 지원에는 인색…기재부 외 예산 심의 권한 분산 필요"
대다수 지방에서는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를 찾기 힘들다. 해당 지역 내 임산부들은 분만을 위해 인근 광역시 또는 대도시로 나가야만 한다. 반면 지방의 산부인과들은 날이 갈수록 임산부 수가 줄어 분만실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이 엇갈린 수요에 따른 의료 공백은 공공 부문만이 메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홍순철 교수는 “병원의 공적 역할은 시장 논리와 확실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며 “분만실은 생명과 연관된 필수적인 시설이기 때문에 적자가 나더라도 이는 ‘건강한 적자’”라고 역설했다.
홍 교수는 이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지만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려운 의료 영역에는 국가가 반드시 관여해야 한다”며 “지방의 산부인과가 한 달에 다섯 건의 분만만 하더라도 병원이 분만실을 운영할 의지가 있다면 국가가 적자를 보더라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공공의료 공급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현재 한국의 공공병원은 전체 의료기관의 6% 정도만을 차지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최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의료의 공공부문을 확대해 분만 사각지대를 없애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현재 출산과 관련된 문제를 민간 의료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의사의 사명감을 갖고 지방에서도 일할 수 있는 공공의료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공공의료의 비율을 30%로 늘린다든지 30분 내지 1시간 이내에 산부인과가 최소 하나는 있어야 한다 등의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현재 국가는 출산과 관련해 일회성 지원에는 너그럽지만 장기적 지원에는 인색한 편”이라며 “관련 예산을 기획재정부에서만 담당할 것이 아니라 사회부총리 산하에도 둬 관련 문제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 논의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예산 심의 권한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저출산 정책에 정부가 집행한 예산은 131조 2604억 원이 넘는다. 그러나 예산 대부분은 출산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분야보다는 일반 복지에 많이 쓰였다. 특히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서 보건 의료분야에 대한 부분은 항상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그동안 저출산 해결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효과가 작았던 이유는 출산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데 사용하는 비용은 적은 데 비해 청년, 노인 문제 등 일반 복지에 해당하는 비용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공공 부문은 적자가 나더라도 병원이 유지될 수 있게 해야 하는 만큼 국가가 출산 문제에 직접적인 지원을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 의사가 부족한 것도 의료 공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데, 특히 잦은 산부인과 의료사고가 산부인과 기피 현상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비(신생아 10만 명당 임신이나 분만 관련해 사망하는 산모 숫자)는 11.3명이다. 이는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가피하게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고스란히 저조한 산부인과 지원율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최근 5년간 전공별 전공의 지원 현황'을 보면, 산부인과의 지원율은 2017년 104.1%에서 2020년 88.7%로 하락했다. 원래도 산부인과 수가 적었던 지방의 피해는 배가 됐다.
홍 교수는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 하더라도 산모가 사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이때 의사 개인이 혼자 짊어지는 부담이 너무 크다”며 “국가가 책임을 함께 져 의사들의 부담과 두려움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