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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 수출규제에 中, 반격 나섰다


입력 2023.04.30 06:06 수정 2023.04.30 06:06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반도체 등 첨단 기술·장비·설비 수입 확대 적극 유도

美 마이크론 중국내 판매제품 인터넷 안보심사 시작

미 기업의 인수·합병(M&A) 심사 늑장 부려 무산시켜

광둥성에 5000억 위안 투입해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창장춘추 공장에서 자오웨이궈(가운데) 당시 쯔광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창장춘추 당시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쯔광그룹 홈페이지 캡처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창장춘추 공장에서 자오웨이궈(가운데) 당시 쯔광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창장춘추 당시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쯔광그룹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규제에 대한 중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 기술과 설비 수입을 적극 유도하기로 한데 이어,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규제에 착수했으며 미 기업의 인수·합병(M&A) 승인을 늦추는 방식으로 ‘보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 판공청은 '대외무역 규모 안정화와 구조개선 추진에 관한 의견'을 통해 중국 정부가 선진 기술 및 설비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공개했다고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 등이 지난 25일 보도했다. ‘의견’은 반도체 등의 수입을 장려할 기술과 제품 목록을 업데이트하고, 해당 기술과 제품 수입업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함으로써 그 기업들이 국내에서 부족한 선진 기술과 설비를 수입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미국이 반도체 부문에서 미 업체들에 대중 장비수출을 제한하고, 일본과 네덜란드 등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미·중 전략경쟁의 핵심적 영역과 관련된 반도체 등의 기술과 설비는 최대한 국내 자급·자족을 꾀하는 한편 미국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포위망이 확대되기 전에 최대한 수입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마이크론에 대한 규제에도 착수했다. 중국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앞서 지난달 31일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인터넷 안보심사를 시작했다. 중국 당국은 국가안전법·인터넷안전법 등을 내세우며 "핵심적인 정보 인프라의 공급망 안전을 보장하고 잠재된 제품의 문제가 인터넷 안보 위험을 일으키는 것을 예방해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측은 안보심사 내용이나 문제가 드러날 경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마이크론 측은 성명을 통해 “중국 당국과 소통하고 있으며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공지했다. 마이크론은 세계 D램 시장에서 점유율 25% 안팎으로 3위, 낸드플래시 부문에선 10% 안팎으로 5위를 달리는 업체다. 지난해 중국에서 전년보다 34% 늘어난 33억 1000만 달러(약 4조 4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308억 달러)의 10%를 넘는다.



쯔광그룹의 자회사 창장춘추의 후베이성 우한 반도체 공장 모습. ⓒ 쯔광그룹 홈페이지 캡처 쯔광그룹의 자회사 창장춘추의 후베이성 우한 반도체 공장 모습. ⓒ 쯔광그룹 홈페이지 캡처

마이크론에 대한 규제 착수는 미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 낸드플래시메모리(낸드) 1위 업체인 창장춘추(長江存儲·YMTC)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인 중신궈지(中芯國際·SMIC)도 같은 제재를 받고 있다.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첨단 반도체와 고성능 반도체를 제조하는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려면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한데 이어, 일본과 네덜란드에도 반도체장비 수출규제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세계 10대 장비업체 중 3곳은 미국, 2곳은 네덜란드, 4곳은 일본, 1곳은 한국에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달 31일 23개 첨단반도체 품목의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법률 하위 규정을 개정해 오는 7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화답했고, 리에 슈라이네마허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부 장관도 지난 8일 "특정 반도체 생산장비 수출통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관련 규제를 여름 이전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미 기업의 인수·합병(M&A) 승인을 늦추는 방식으로 미국에 ‘보복’하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중국 반독점당국은 미 기업과 관련된 다수의 M&A 건에 대한 심사에서 ‘몽니’를 부려 스스로 물러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인텔이 이스라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타워 세미컨덕터(Tower Semiconductor), 미국 광대역 통신용 반도체 업체 맥스리니어(MXL)가 대만 후이룽커지(慧榮科技·Silicon Motion)의 인수를 결정하고 중국 당국의 심사를 받고 있다. 인텔은 올해 1분기 중 타워 세미컨덕터 인수를 끝낼 계획이었으나 중국 당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인수 시점이 뒤로 밀렸다.



지난 2월 중국 장쑤성 쑤첸시에 있는 한 반도체 제조공장에서 한 직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지난 2월 중국 장쑤성 쑤첸시에 있는 한 반도체 제조공장에서 한 직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M&A는 반드시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들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반도체 최대시장 중 하나인 중국은 그동안 여러 차례 M&A 승인을 무기로 삼아 해당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실제로 대형 M&A가 무산된 사례도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가 2021년 일본 반도체 업체 고쿠사이 일렉트릭(Kokusai Electric)를 인수하려다 포기했다. 심사 고의지연 기간 반도체 업황이 호전되면서 인수대금이 크게 불어난 탓이다. 미 퀄컴은 세계 2위 차량용 반도체 업체 네덜란드 NXP를 인수하려다 중국 당국이 2년 넘게 승인을 내주지 않아 2018년 인수를 중단했다.


중국 정부는 광둥(廣東)성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에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해마다 1조 위안 규모의 반도체를 수입해온 광둥성은 베이징과 상하이에 건설된 것과 비슷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왕시(王曦) 광둥성 부성장은 18일 자동차 및 전자 업체의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광둥성에 5000억 위안(약 96조 6000억원) 규모를 투자해 40개의 반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은 미 정부의 중국견제 정책에 맞서 중국 반도체를 자급자족하기 위한 대응책이라고 덧붙였다.


ⓒ 자료: 대만 트렌드포스 ⓒ 자료: 대만 트렌드포스

이런 가운데 창장춘추가 독자기술을 적용한 첨단 반도체 생산에 상당한 진전을 이뤄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창장춘추는 중국 최대 반도체장비 업체 베이팡화촹(北方華創·NAURA) 등과 함께 독자 중국산 기술로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인 128단 낸드 생산공정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창장춘추는 증착·식각장비 중국 1위 업체인 베이팡화촹 등에 대규모 발주를 했으며 미국의 제재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협력업체들에 납품 장비에서 로고와 다른 식별 표시를 제거할 것을 요청했다고 SCMP는 덧붙였다. 128단 낸드 생산을 곧 시작할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창장춘추는 2016년 쯔광(紫光·Tsinghua)그룹과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합작으로 설립됐다. 쯔광그룹이 후베이성 우한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유 반도체기업인 우한신신(武漢新芯·XMC)의 지분 과반을 인수해 재설립한 것이다. 2017년 32단과 2019년 64단, 2020년 128단 낸드 개발에 잇따라 성공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캐나다 반도체 전문매체인 테크인사이츠가 창장춘추가 232단 낸드 개발에 성공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덕분에 창장춘추는 ‘반도체 굴기’를 노리는 ‘중국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기술적 장벽이 낮다고 여겨지는 낸드 분야에서 성장을 이뤄온 까닭이다. 낸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얼마나 높은 단수로 메모리 셀을 쌓아올리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 자료: 마이크론 ⓒ 자료: 마이크론

창장춘추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19년까지 1% 미만에 그쳤으나 현재는 4%를 웃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낸드 점유율 순위는 삼성전자(31.4%)에 이어 키옥시아(20.6%), SK(18.5%), 웨스턴디지털(12.6%), 마이크론(12.3%), 기타(4.6%) 순이다. 기타의 점유율이 2019년 0.5%에서 4년 만에 10배 가까이 뛰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제조업의 특성상 기타의 대부분이 창장춘추 몫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가 마이크론에 대해 제재하면 반사이익은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에 돌아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에서 마이크론 제품의 판매가 금지될 경우 창장춘추·선전진바이다(深圳金百達)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천자(陳佳) 중국 인민대(人民大) 연구원은 SCMP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중국내 사업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며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점점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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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국제에디터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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