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되더니 사람이 변했어! 어쩌면 당연지사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자리에 걸맞은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그 또한 욕 들을 일이다. 그런데, 이미 관객의 인정과 사랑을 듬뿍 받았음에도 이제 막 배우가 되어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신인처럼 피와 살을 갈아 연기하는 이가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겠는가. 영화 ‘아마존 활명수’의 주연 류승룡에 관한 얘기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혀를 날름거릴 때부터 놀랐다. 처음엔 혀를 넓게 펴고 길게 빼서 날름날름, 이후엔 혀를 V자로 좁게 접어 날름, 강도와 시간은 조절했으나 열심히 날름거렸다. 심지어 바지에 오줌도 싼다. 하하 호호 낄낄 깔깔 웃으면서도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비집고 나왔다.
영화 ‘7번방의 선물’(2013)이 1281만 명, ‘극한직업’(2019)으로 1626만 명, 우리에게 즐거운 웃음을 준 류승룡의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제외해도 이미 큰 웃음 선사했다. 보통 이러면 같은 코미디영화를 찍어도 스타가 된 주연은 내러티브를 이끌며 극의 분위기를 잡고, 조·단역 배우들이 몸으로 웃긴다. 그런데 류승룡은 여전히 몸을 던져 추락하고, 누가 받아주지 않으면 뇌진탕이라도 걸릴 듯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하고, 보는 이가 무의식중에 자신의 무릎을 만질 정도로 철퍼덕 무릎을 꿇는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코미디 연기만 떠올릴 것도 없다. 748만 명이 본 영화 ‘최봉병기 활’(2011)에서 육중한 화살 육량시를 쏘는 주신타로 분해 두려움을 주었고,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허균을 맡아 얼마나 진중했는지 1232만 명이 봤고, 대한민국 역대 흥행 최고작 1761만의 ‘명량’(2014)에서는 잔혹하면서도 전략이 뛰어난 일본 용병 구루지마로 등장해 우리를 벌벌 떨도록 만들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가 가장 처음 주목했던 K-드라마 ‘킹덤’ 시리즈(2019~2020)에 실질적 최고 권력자이자 간악무도한 영의정 조학주로 등장해서는 세계인의 미움을 샀다. 무엇보다 불과 지난해 디즈니+ 드라마 ‘무빙’에서 남산돈가스 사장 장주원이자 무한 재생 능력을 지닌 히어로, 암호명 구룡포의 블랙요원으로 우리를 찾아와 얼마나 듬직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가.
이 정도 되면, 압도적으로 무게감 있거나 ‘잘생김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천만 영화만 4편, 누적 관객 1억 명의 배우가 이렇게 대놓고 망가진다고? 배꼽 빼는 웃음에 휴머니즘 감동이 범벅, 세계 최고 수준의 양궁 국가에 드디어 양궁영화가 나왔구나! 영화는 영화대로 감상하면서도, 밝고 맑게 즐길 수 있는 ‘스낵무비’이다 보니 계속해서 배우 류승룡을 생각했다.
필자 마음대로 내린 추측성 결론은 이랬다. 와! 스타 되고도, 주연이면서도 저렇게 몸 사리지 않고 연기하니 계속 사랑받는구나. 1970년생, 어쩌면 매 순간의 감사함을 아는 지천명의 나이를 지났기에 ‘신인보다 더’ 자신이 지닌 모든 걸 쏟아 연기할 수 있구나.
주연 류승룡이 직장도 양궁팀도 고난에 처해 인생 자체가 위기에 놓인 조진봉이 되어 분발하니 그렇지 않아도 코미디 연기 잘하는 진선규가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인물 빵식이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고, 진봉의 처 차수연에 캐스팅된 염혜란 역시 사람 좋은 얼굴을 ‘호랑이상’으로 만들어 웃음 빵빵 호흡을 맞췄다.
그래도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의 답은 아니다. 어쩜 그리 온몸 던져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보는 우리가 그 망가짐을 망가졌다고 느끼지 않고, 감탄에 비례해 더 크게 웃을 줄은 미리 알 수 없는 일이잖은가.
그래서 물었다. 지난 24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망가져도 흉하지 않더라, ‘아, 류 배우가 이 영화를 위해 온몸 던졌구나’ 진정성이 느껴지더라. 이게 쉬운 건 아니다, 왜? 이미 톱스타 배우다. 작품에 임할 때는 그것을 잊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진심으로 저는 관객이 영화를 완성 시켜 주신다고 생각해요. 매우 잘된 영화도 처음엔 그렇게 잘될지 몰랐고, 흥행 안 된 영화도 그렇게 될 줄 몰랐던 거고요. 그래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이번엔 많이 사랑해 주신 ‘극한직업’의 두 사람(류승룡-진선규)이 다시 만났잖아요, 관객의 기대가 이미 형성돼 있는 거예요. 그럼 그 기대에 실망 드리면 안 되는 거고, 무엇보다 받았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거잖아요. 선규랑 저랑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다하자! 다짐하며 촬영했어요,”
“정말, 진짜 ‘장인의 정신’으로 매 신(scene, 장면)에 임했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볼 기회가 많았어요. 장면이 실감 나게 풍성해지도록 아이디어도 내야 했고요. 스토리 상 조진봉은 살아남아야 하고, 소통해야 하고, 공감해야 하는 인물이에요. 처음엔 여러 고난이 한꺼번에 닥쳐오다 뒤로 갈수록 기뻐하고 성과를 얻기도 하는, 캐릭터의 성장이 있는 영화인데요. 초반에 그런 생존, 생계의 부분을 부각하느라 관객께서 보시기에 톤 업(tone up) 된 연기가 있어요. 즐겨주셨으면 좋겠고요. 소변도 현장에서 제가 아이디어 내서 ‘이렇게 신 마무리하자’ 한 거예요. 창피하고 이런 게 어디 있어요, 관객께서 웃어주시면 소통이 된 거니까 너무 좋은 거죠.”
“염혜란 배우도 힘이 됐어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잠깐 나오는데, ‘저이 누구야!’. 너무 팬이고, 같이 한다고 해서 저는 영광이고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정말 대단한 게 직접 돌아다니며 옷 사고, 입은 티셔츠마다 호랑이 있고 사자 있어요. 응원할 때 아마존 옷 입고, 보시면 ‘세이브 아마존’(Save Amazon, 아마존을 지키자)이라고 적혀 있어요. 짱구 같은 눈썹 염색 설정도 ‘고 때’(집에 양궁팀 숙소를 차리려 시카·이바·왈부 선수들을 데리고 온 날)에 딱 맞춰서 하고 오고요. 아이디어를 많이 내주셨어요. 그런 아내를 무서워한다, 그만큼 신뢰한다,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거죠.”
배우 류승룡에게서 들은 비결은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매 순간 ‘장인의 정신’으로 임하는 것,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를 믿고 존중하며 연기하는 것이었다.
류승룡은 이번 ‘아마존 활명수’의 코미디 연기를 ‘액션 연기’라고 표현했다. 단지 몸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기와 우리의 연기, 그것을 담아낸 장면이 과연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는가를 쉼 없이 생각하며 ‘객관화’를 위해 노력하다 보니 촬영이 끝나고 나면 심신이 녹초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코미디 연기, 어려워요. 가장 적합한, 알맞은 게 무엇일까를 고민할 때가 고통스럽게 힘들어요. 추창민 감독이 ‘광해, 왕이 된 남자’ 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오케이란 없다, 오케이에 가까울 뿐이지. 코미디도 마찬가지잖아요. 나의 연기, 작품 전체를 객관화해서 보는 것에 과부화가 걸리면서 (웃음) 쉽지 않았어요. ‘무빙’은 액션만 하면 되잖아요, 웃으면서 촬영했어요, 몸은 힘들어도. 코미디는 정교함을 필요로 해요, 촬영 끝나면 심신이 졸도해요.”
배우 류승룡이 말하는 정교함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에피소드가 있다. 앞서 말한 바지에 소변 장면. 단순히 슬랩스틱, 몸으로 웃기자는 코미디가 아니었다. 류승룡이 이 장면을 제안한 이유에는 ‘문화적 평등’에 관한 숙고가 있었다.
“제가, 조진봉이 아마존 원주민 선수들에게 양궁을 가르치는 입장이잖아요. 또 흔히 (아마존의 원시 대비 한국이) 문화적 우위에 있다는 사람이고요. 진봉의 허당을 보여줄수록 문화적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했어요. 한국 배우가 많은 가운데 소수의 외국인 배우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일까봐 진지하게 살폈어요. 또 시카 역의 배우(이고르 페드로소)는 진짜 원주민 후예여서 아마존이 문화적으로 하위로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원주민분들이 영화를 봤을 때 자신들을 희화했다고 느끼시면, 그건 아니잖아요, 영화의 주제에도 어긋나고요. 우리는 대본을 시카에게 검수받고, 시카는 고향의 부족에게 검수받고, 우려를 자아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만들었어요. 그런 작은 지점들이 모여서 작게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감동을 일구고 나아가서는 우리가 지구의 기후환경에 대해 생각도 해볼 수 있다면, 기쁨과 즐거움 드리는 코미디영화의 재미에 더해 미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영화가 어느 배우가 복합적 사고를 통해 연기하고 만들어지지 않겠는가마는. 해결책으로 ‘자신을 던지는’ 쪽을 택하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는 별개의 문제다. 자신의 코미디 연기와 영화 전체의 객관화에 대해 고민하느라 본인 능력치의 과부하에 걸려 졸도했다고 말하는 류승룡을 보며 21세기 한국영화 코미디 지존의 ‘행복한 엄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포르투갈어도 하고 아마존 타가우리족 원주민 통역사를 하는 빵식이가 진봉이 졸도하자 말한다. “아니야, 저거 좋아서 그래!”.
조진봉 류승룡을, 아니 ‘아마존 활명수’(감독 김창주, 제작 로드픽쳐스·CJ ENM MOVIE, 배급 바른손이앤에이) 전 제작진과 출연진을 기쁨에 졸도시킬 수 있는 이는 배우 류승룡의 말처럼 ‘영화를 완성 시키는 관객’,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