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0조원 하회…연초 수준으로 회귀
신용거래융자잔고·펀드 설정액도 줄어
박스피에 실적시즌 무색…미 대선 변수
최근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면서 투자 대기성 자금이 감소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장(국내 주식 시장)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하락하면서 연초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밸류업 정책 성과에 대한 물음표가 찍히고 있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50조5866억원으로 사흘 전인 지난달 28일(50조7325억원)부터 50조원대가 위태로워진 상태다.
전날인 30일(49조5973억원)에는 50조원대가 붕괴되기도 했다. 투자자 예탁금 50조원 선이 무너진 건 연초였던 지난 1월 26일(49조649억원) 이후 9개월 여만에 처음이다. 지난 8월 초(8월 5일·59조4876억원)만 해도 60조원을 바라봤는데 이제는 50조원 수성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증권사 등에 맡기거나 주식을 팔고서 찾지 않은 자금으로 언제든 증시에 투입될 수 있는 대기성 자금 성격이 짙어 증시 열기의 측정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결국 이러한 투자자예탁금 감소는 식어버린 국내 증시 투자 열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달 코스피지수는 1.43%(2593.27→2556.15) 하락했는데 2500~2600선에서 등락하면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11월 첫 날(1일)에도 지수는 추가로 0.54%(2556.15→2542.36) 떨어졌다. 하반기 첫 달이었던 지난 7월 코스피지수가 2700~2800선을 오가며 상승장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투자자예탁금과 함께 증시 투자 열기 측정 지표로 쓰이는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최근 줄어들고 있는 것도 국내 증시의 활력도 하락을 방증한다.
금투협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7조8861억원으로 최근 들어 다시 감소세다. 소위 빚투 자금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7월 초까지만해도 20조원대를 넘었지만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 9월 중순에 16조원대(9월19일·16조9926억원)까지 떨어지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다시 18조원대를 회복하기도 했지만 이후 등락 속에서도 우하향에 보다 무게가 실리는 양상이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뒤 아직까지 갚지 않고 남은 자금을 의미한다. 빚투 성격의 자금인 만큼 규모가 늘어난다는 것은 투자를 위해 빚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주로 상승장에서 늘어나는 투자 수요와 맞물려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자금 유출은 간접투자 상품인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최근 일주일간 국내 주식형 펀드는 설정액이 53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채권형(1237억원)·해외 주식형(785억원)·해외 채권형(3254억원) 펀드가 모두 설정액이 증가한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증시 자금 이탈이 ‘박스피’라는 오명이 씌워질 정도로 국내 증시의 박스권 횡보가 장기화되고 있는데다 상장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당초 기대됐던 3분기 실적 시즌 효과도 무색해졌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또 미국 대선이라는 대외적 변수와 함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등도 겹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라는 야심찬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이 존재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현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 매력 하락도 문제지만 향후 개선될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미국 대선과 금투세 등 현존하는 불확실성이 다소나마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해외로 발길을 돌린 투자자들을 다시 국내로 불러올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사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