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운용수익 올해 12% 늘어
경쟁사들은 상품 중단 탓 '제동'
규제 강화로 추가 악재 불가피
우리은행의 신탁 부문 실적이 올해 들어 4대 시중은행들 가운데 나 홀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에 불거졌던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속에서 비교적 무풍지대에 놓여 있던 덕에 우리은행만 관련 상품 판매를 이어갈 수 있었던 영향이다.
다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금융투자 상품 판매 규제 강화가 가시화하면서 은행권 전반의 신탁 사업에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개 은행이 신탁업무에서 올린 운용수익은 총 54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줄었다.
신탁은 고객 스스로 자신이 가진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 등 재산을 운용하기 어려울 때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이를 대신 맡기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탁 사업은 대체로 큰 조직을 가진 금융사를 통해 이뤄지는데, 신탁 업무를 겸하는 신탁겸영은행이 시장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은행들은 신탁 고객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거둔다.
은행별로 봐도 거의 대부분의 신탁 실적 위축됐다. 국민은행의 신탁업무 운용수익이 1375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25.4% 급감하며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신한은행 역시 1255억원으로, 하나은행은 1518억원으로 각각 4.8%와 3.6%씩 해당 금액이 줄었다.
대비되는 건 우리은행이었다. 조사 대상 은행들 중 유일하게 신탁 성적이 개선됐다. 우리은행의 신탁업무 운용수익은 1296억원으로 12.1% 늘었다.
은행권의 신탁 실적 부진은 사실상 예견된 결과였다. 올해 초 홍콩 H지수가 폭락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ELS에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했고, 결국 은행권에서 관련 상품 판매가 줄줄이 중단된 탓이다. 이같은 ELS를 담은 주가연계신탁(ELT)은 시중은행들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준 신탁 상품이었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된다. 통상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상환 기회를 주고, 만기 시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기준을 밑돌면 통상 하락률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우리은행이 신탁 사업 확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와 맥락이 맞물려 있다. 홍콩 H지수 ELS가 도마에 오른 직후 국민·신한·하나은행은 판매 중단을 결정했지만, 우리은행은 판매액이 가장 적었던 덕에 상품 취급을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관건은 금융당국의 규제다. 은행 창구에서의 고난도 금융투자 상품 판매를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공개세미나를 열어 은행의 ELS 등 고난도 금투상품 불완전판매를 막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정두 금융연구원 박사는 ▲최대 원금손실 가능 금액이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복잡한 고난도 상품의 은행 판매 전면 금지 ▲지역별 거점 점포에서만 고난도 금투상품 판매 허용 ▲은행 점포 내에서 예·적금 창구와 고난도 금투상품 판매 채널 분리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참석한 각계 전문가 의견뿐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주신 의견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향후 최종 대책 수립 시 반영하겠다"며 "오늘 언급된 1안과 2안, 3안 중에서 변형된 형태로 제도 개선안이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의 금융투자 상품 판매에 대해 어느 때보다 강한 규제가 예상된다"며 "은행들이 미래 성장성을 겨냥해 추진해 온 신탁 사업 확장 전략에 대폭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