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본회의 통과한 '국회증언법' 둘러싼 잡음
수시로 기업인 소환하고 영업 비밀 제출도 '강제'
주요 기업들 초비상..."반기업이자 악법" 우려 높아져
한국 기업들의 경영 시계가 멈춰섰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던 와중 국내 정치권이 탄핵 정국을 맞이하면서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제조업들의 특성상 외부 동향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마땅하나, 갑자기 발생한 탄핵 정국으로 인해 정부 정책 협력이 올스톱되는 것은 전혀 예견치 못한 상황이다.
더욱 문제는 지난달 야당(더불어민주당) 발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국회증언법이다. 해당 법안은 개인정보 보호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서류 제출과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 없고, 해외 출장과 질병 시에도 화상 연결 등을 통해 국회에 원격 출석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쉽게 말해 국회의원이 수시로 기업인을 국회로 호출할 수 있고, 영업 비밀이 담긴 서류를 '강제로' 제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디 국감 분인가. 각종 안건 심의에도 부를 수 있다. 서류 제출을 거부하거나 정보를 허위로 제공할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도 담겼다.
가령 산업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국회의원은 이를 명분으로 기업 운영 전반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기업은 해당 사고와는 관계없는 정보를 모조리 공개해야 한다. 기업의 존속을 위해 지켜져야할 '영업 비밀' 혹은 '산업 기밀'이 자칫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국회가 삼성전자 혹은 SK하이닉스에 반도체 공정 관련 요구를 할 수도 있고, 삼성 및 LG디스플레이에 패널 공정 관련 정보를 요구하고 강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로 든 산업군은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다.
주요 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간의 국감 시즌에서의 기업 총수 출석 요구도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았던 상황에서, '수시로' 불려다닐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심지어 영업 비밀을 뱉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재계는 한 목소리로 "말도 안되는 반(反)기업 법이자 악법"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간 재계에서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던 '반도체 특별법', 'AI 기본법' 등은 아직도 국회서 계류 중이라는 사실이다. 계엄 및 탄핵 사태로 인해 여러가지 법안들에 대한 심의 및 토론이 멈춘 것인데, 역설적으로 반기업 정서가 담긴 '국회증언법'은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당초 국회증언법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예상됐던 법안이지만, 탄핵 정국으로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국무회의를 통과할 경우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수 있다. 국무총리에 의해서도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지만 현재 정치권의 역학 관계에선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기업들에 약속됐던 지원은커녕 되려 경영 활동에 족쇄가 채워질 수도 있다는 한숨이 여기저기 들려오는 이유다. 첨단 제조 산업의 경우 사실상 한국 업체들의 가장 큰 경쟁자는 중국 기업이다. 인력 유출에 산업 기밀까지 빼내가는 정황이 심심찮게 포착된 바 있다. 특히 정부 지원을 강하게 받는다는 점에서 그 경쟁력은 국내 기업과 비교하기 어렵다.
최근 5년새 발생한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 수는 1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올해 경찰에 적발된 건수만 해도 지난해 대비 5배가 급증한 10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증언법'이 강행될 경우, '기업 옭아매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나아가 '합법적으로 외부에 유출이 가능하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사실상 묵인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음을 정치권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