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고 일어난 게 아니라 계엄·탄핵사태 덮기 위한 조작' 음모론 확산
'사고기는 모형 항공기', '사고기 조종사는 여성'이라는 근거없는 주장도
경찰, 118명 전담팀 구성해 99건 내사…유족 비하 글 올린 30대 1명 검거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희생자 유족들을 두 번 울리는 가짜뉴스가 SNS를 타고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심지어는 '사고기 기장은 사실 죽지 않았다', '사고기는 진짜가 아닌 모형', '이번 사고는 관심을 정치권으로부터 돌리기 위한 고의 사고'라는 등의 허위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여기에 '가짜 유족', '부모가 벌 받았네' 등 유가족을 조롱·비하하는 댓글과 게시물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2차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찰 등이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전날 4일 오후 5시 기준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악성 게시글 99건에 대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또 전남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전날 참사 유가족 보상 관련 비방성 글을 올린 혐의(모욕)를 받는 30대 남성 A씨를 검거하기도 했다. 참사 직후 118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꾸린 경찰은 악성 글 게시 관련 압수수색 영장 44건을 신청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퍼지고 있는 허위정보는 사고 현장 상황을 왜곡한 것에서부터 아예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음모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서는 적극적으로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내용을 보면 "사고기 기장은 사망하지 않았고 사실 생존해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기 조종석 지붕 사진을 보여 주면서 '다른 곳에서 가져온 고철', '잔해가 인위적으로 잘려져 있다', '폭발이 있었는데도 잔해가 멀쩡하다'며 진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게 핵심 내용이다.
비행기 잔해를 보면 불에 탄 자국이 없다는 이유로 사고기가 '모형'이며 생존한 제주항공 승무원 2명이 구급차에 실리는 모습을 두고 '마네킹'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사고기 기장의 성별은 여성'이라며 젠더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국토부, 경찰,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고기의 기장과 부기장은 모두 남성으로,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참사 당시 장면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이번 참사가 예정된 테러 혹은 계엄과 탄핵 정국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어떻게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사고 순간을 찍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상을 촬영한 이근영(50)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이씨는 "음모론을 퍼트리는 사람들은 진짜 너무하다"며 "엔진이 폭발음을 내며 터지는는 듯한 소리가 4~5차례 들리더니 원래 비행기가 착륙하는 방향이 아니라 반대인 우리 가게 쪽으로 와서 '뭔 일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옥상에 올라가 영상을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참사 피해 유가족들을 정치적 프레임으로 엮어 명예를 훼손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피해 유가족 박한식 대표에 대해 '가짜 유족', '민주당 권리당원' 등으로 지칭하며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에 대해선 광주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0명이 형사 고소에 나서기도 했다. 변호인들은 "악의적인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종을 울리려는 조치"라고 말했다.
의정갈등 상황에서 휴학을 하지 않고 의사 국시를 준비하는 의대생을 비꼬는 게시물도 올라왔다.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는 지난 1일 이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20대 의대생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그러나 이 기사의 댓글창에는 피해자를 위로하기는 커녕 "자식이 죄인인데 벌은 부모가 받았네"와 같은 비하와 조롱이 이어졌다.
세월호·이태원 등 대형 참사 때마다 등장하는 가짜뉴스와 유가족 조롱은 형법상 모욕죄, 업무방해죄 등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처벌 수위는 낮다.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하는 합성 포스터를 커뮤니티에 게시해도 벌금 100만원에 그쳤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글을 채팅창에 올려 재판에 넘겨져도 1·2심에서 무죄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