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홍콩 ELS 사태로 중도해지↑
SC제일은 288억…4대 은행 58억원
국내 은행들이 지난해 3분기까지 신탁 상품을 만기 전에 깬 고객들로부터 349억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 신탁시장 성장세에 따라 중도해지 수수료도 1년 전보다 2.7배가 늘어난 것이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국내 21개 은행들의 신탁 계정 중도해지수수료 수익은 348억9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21억5600만원) 대비 173.9% 증가한 수준이다.
은행별로는 SC제일은행의 신탁 중도해지수수료 수익이 288억14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도 196.3%로 가장 높았다.
우리은행은 23억원, 하나은행은 20억7800만원으로 같은기간 각각 176.8%, 153.1% 늘었다. 신한은행은 14억5800만원, 경남은행은 1억880만원으로 각각 17.9%와 276%씩 늘었다. 국민은행은 1300만원으로 동일했다.
신탁업은 고객의 금전이나 유가증권·부동산 등의 자산을 은행이 맡아 운용·관리·처분하는 업무다. 은행은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대신 운용 수수료를 얻는다. 예금보다 관련 규제가 적어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상속 목적의 유언신탁을 포함한 자산관리 상품 수요가 커지면서 은행권은 비자이익 부문을 확대하기 위해 신탁사업에 매진해 왔다.
주가연계신탁(ELT)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신탁 수익도 늘었으나 지난해 초에 불거졌던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로 제동이 걸렸다. 이에 국내 은행들의 신탁 수익은 지난해 3분기 9244억원으로 1년 전보다 4% 줄었다.
중도해지수수료 수익이 높다는 것은 운용 수수료율이 높거나 고객이 신탁 상품을 중도에 해지하는 사례가 많다는 의미다. 고금리로 증시가 불안정했고 지난해 홍콩 ESL 사태로 손실을 우려한 고객들의 중도 해지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은행마다 중도해지수수료가 차이가 큰 이유는 상품 설계와 판매 전략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은행의 경우 금전신탁의 비중이 크고 중도해지가 발생하지 않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증권사가 발행한 ELS를 신탁 자산에 편입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일부 상품은 중도상환 조건이 있어 중도 해지를 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제일은행의 경우,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중심으로 신탁 사업을 키워왔다. ETF는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투자 내역도 고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수익률 제고에도 효과적으로 수익실현을 위해 언제든지 고객이 매도 및 해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도해지 수수료가 타 은행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지난해 목표 수익률을 달성해서 만기 전에 중도해지한 경우도 있고, 증시가 불안해서 손절한 사례도 꽤 있었다”며 “ETF 상품을 중간에 환매하는 경우, 사전에 부과한 선취수수료를 중도해지수수료로 처리하는 곳도 있어 은행별로 중도해지수수료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다만 신탁 시장이 어느 정도 성장한 만큼, 고객들의 중도해지수수료 비용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축된 신탁업을 활성화 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편, 가계대출의 경우 중도상환수수료 인하 정책이 이달 중 시행된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중도상환수수료 산정방식을 개편할 것을 요구하면서다. 주담대 고정금리 1.4%, 변동금리 1.2%의 중도상환수수료율이 절반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금리인하기 중도상환수수료율이 낮아지면 주담대 갈아타기도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