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극장으로⑱] 서울 종로구 소극장 혜화당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대학로 소극장의 죽음’ 선포와 함께 탄생한, 혜화당
지난 2015년 3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상여를 맨 연극인 150여명이 모여들었다. ‘문화지구’인 대학로에서 문화인들이 내몰리고 있다며 “대학로 소극장의 죽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들은 준비한 상여를 둘러업고 곡소리를 하며 공원으로 행진했다. 이들의 선두엔 “문화융성시대에 문화말살 웬 말이냐” “내몰리는 연극인, 내몰리는 연극 거리”라는 만장(고인을 애도해 지은 글을 적은 깃발)이 나부꼈다.
2004년 연극 활성화를 위해 대학로는 문화지구로 지정됐지만 상권이 커지고 상업화가 가속됐다. 그 결과 임대료가 비싸지고, 비싼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연극인들은 내쫓기듯 대학로를 떠나야 했다. 실제로 그 당시 상상아트홀, 꿈꾸는 공작소, 대학로극장 등 대학로의 역사와 함께 해온 소극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소극장 혜화당은 대학로 소극장의 죽음이 선포되던 당시 혜화동에 입성해, 현재까지 10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1년 개관한 1세대 소극장이었던 까망소극장의 폐관 소식에 10명의 젊은 예술인이 모여 극장을 인수, 80석 규모의 소극장 혜화당으로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10년 넘게 대학로를 지켜왔던 극장들이 임대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라져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뜻이 맞는 연극인들이 모였던 거죠. 한 사람이었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웠겠지만, 10명 정도의 동인이 모여 극장을 인수하면 부담을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창작스튜디오 자전거 날다라는 팀이 있었는데 함께 논의해서 공동위원회가 모였습니다.” (김세환 프로그래머)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할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학로를 비롯한 홍대, 서촌 등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낸 원주민들이 설 자리를 잃고 밀려나던 시기였고 현재까지도 대학로의 많은 극장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세환 프로그래머는 이곳이어야 했던 이유를 ‘역사의 단절’을 막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작년에 김민기 선생님이 돌아가셨잖아요.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학전에는 수많은 예술가가 거쳐갔고요. 그냥 건물이 아니라 역사가 서려 있는 공간인 거죠. 학전이 폐관으로 끝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어린이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하게 된 것도 문화와 역사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역사성’이 평가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같은 맥락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단순히 극장을 개관하는 문제였다면 더 좋은 건물, 더 좋은 위치, 더 좋은 공간을 따져서 새롭게 개관했을 거예요. 하지만 역사성이 있는 까망소극장 자리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상가가 들어오는 등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니까요. 역사가 단절되는 걸 막고 싶었습니다.”
“페스티벌 전용 극장, 초심이자 목표는 ‘공생’”
출발부터 특별했던 혜화당은 극장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다른 극장들과는 차별됐다. 당장의 손익분기를 맞추기 위해선 대관사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이들은 일종의 ‘공공 극장 모델’을 표방해 이들만의 운영 철칙을 세웠다. 그렇게 설정된 혜화당의 방향성은 ‘페스티벌형 극장’이다.
“우리만을 위해 이 공간을 사용하지 말자고 약속했어요. 문제는 임대료에 대한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고민 끝에 내릴 결정이 페스티벌 전용 극장으로 사용되도록 한 거죠. 사실 저희는 모두 연극인이었어요. 막상 인수하고 나니까 생각하지도 못한 운영 문제가 발생하더라고요. 스터디도 하고, 다른 극장의 운영 사례도 살펴봤죠. 그와중에 임대료는 더 올라가고 대관료도 당연히 높아지고요. 그러던 차에 다행히 서울시 임대료 지원 사업인 서울형창작극장에 선정돼서 임대료에 대한 고민은 해결이 됐어요. 마음놓고 더 열심히 페스티벌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거죠(웃음).”
목표대로 혜화당은 SF연극제, 미스터리스릴러전, 단단페스티벌, 소설시장 페스티벌, 123페스티벌 등 다양한 페스티벌을 진행하면서 ‘대학로 공연 페스티벌의 전당’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에는 기존에 선보이던 페스티벌들은 물론이고 사극페스티벌(6월 진행 예정)과 연극인 캠프 ‘프로젝트 3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연극제도 준비 중이다.
“‘연극인이 사용하는 극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페스티벌을 꾸준히 진행한 덕분에 많은 연극인을 혜화당에서 만났어요. 1년에 페스티벌만 4~5개를 진행했는데, 최소한 20개 팀이 매년 저희 극장을 거쳐간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젊은 신생 팀부터, 중견 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고 새로운 창작자들과의 만남도 많고요. 페스티벌 특성을 보면 아시겠지만 장르 특성화 페스티벌이 많잖아요. 그래서 해당 장르의 마니아들을 잘 만나게 돼요. 그 덕에 새로운 전문성 있는 인프라가 많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사실 혜화에서 혜화당은 소위 ‘듣도 보도 못한 극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성이 있는 극단도 아니죠. 그러나 페스티벌이 저희의 원동력이 되어서 혜화당의 존립 이유가 됐습니다.”
혜화당의 또 다른 원동력은 서로 다른 영역을 마크하고 있는 10명의 운영진이다. 연극이라는 장르가 협업이 중요한 예술이다 보니 다양한 예술인이 연대하면서 오는 시너지가 혜화당만의 아이덴티티가 되고, 이들이 선보이는 페스티벌의 다양성과 퀄리티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운영진은 영화 시나리오, 영화 감독부터 희곡 작가, 사진 편집자, 발행인, 연출자, 배우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어요. 그러다 보니 회의를 할 때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고정된 형태의 것이 아닌 재미있는 페스티벌을 기획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협업을 하다 보니까 계속 끊임없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서로를 견제하고 설득해야 하죠. 그런 과정들이 누군가에겐 갈등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저희는 서로를 건강하게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끊임없이 고민해서 상대를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런 면이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콘텐츠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거죠.”
10명의 운영진이 서로 건강한 경쟁을 통해 혜화당을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이곳 혜화당도 다른 공연장 그리고 연극인·예술인들과 함께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꿈꾼다. 페스티벌형 공연장으로 방향성을 세웠던 초심 그대로, 이들이 바라는 목표는 오로지 ‘공생’이다.
“‘함께 살자’가 우리의 방식이에요. 물론 여전히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진 못했어요. 창작형 지원 사업 덕에 마음껏 페스티벌을 할 수 있는데, 지원사업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될진 모르는 거라 불안함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공생’을 목표로 계속 나아갈 생각입니다. 혹여 다른 공연장에서 혜화당의 페스티벌 노하우나 형태, 진행 방식 등을 그대로 가져가서 쓴다고 해도 대환영입니다. 오히려 ‘훔쳐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더 많은 연극인이 같이 창작하면서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페스티벌이 하나의 ‘소극장 운동’처럼 벌어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