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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김의성의 재발견, 이제 ‘조커’ 주연을 맡길 때가 됐다


입력 2025.03.31 13:59 수정 2025.03.31 14:0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김의성 ⓒ㈜쇼박스


영화 ‘로비’는 배우 김의성에 대한 재발견을 안긴다.


연기 잘하는 거야 전 국민이 알고,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악역 연기에 최고인 건 너무 잘 알지만, 이번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리얼 캐릭터’를 빚었다. 업무에 있어 원칙과 공정을 중시하는 사람이 사심에 의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상대가 원하지 않는 그 사심이 진지하면 할수록 얼마나 폭력적 악화일로를 걸을 수 있는지 실감 나게 보여준다.


‘로비’(감독 하정우, 제작 워크하우스컴퍼니, 필름모멘텀, 배급 ㈜쇼박스)에서 배우 김의성이 탄생시킨 국토교통부 최 실장은 ‘자기확신범’이다. 언뜻 보기에 불일치해 보이는 공적 공정성과 사적 성추행이 양립할 수 있는 이유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의 핵심 쟁점과 미래 기술의 개요를 숙지하고 있을 만큼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팬질’에도 최선을 다해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골퍼 진세빈의 경기 내용 자료가 10테라에 이를 정도다. 나라 잘되게 하겠다고, 진 프로 잘되게 하겠다고 하는 일이라는 ‘명분’ ‘자기 확신’이 있기에 자신감 있고 멈출 줄 모른다.


마치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액셀만 밟아대는 그의 추진력과 행동력은 공적 영역일 때는 빛을 발하지만, 사적 영역일 때는 얄미움을 넘어 구토를 부른다. ‘구타유발자’ 아닌 ‘구토유발자’, 김의성이 얼마나 연기를 잘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자 신예 강혜림(진세빈 프로 역)의 반응이 과해 보이지 않게 ‘공감을 얻도록’ 하는 바탕이다.


영화 ‘로비’의 빌런, 최 실장 역의 배우 김의성 ⓒ㈜쇼박스

지난 28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의성은 캐릭터에 대한 설명, 접근법부터 들려줬다.


“성공적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는 지도층 인사예요. 전문적 커리어를 쌓아온, 인생에서 실수하지 않고 공정에 대한 강박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 나이에 괜찮은 사람이죠. 비극적 결함을 가지고 있어요. 누군가를 너무 사랑한 죄, 10테라만큼 사랑한 죄. 자기가 몰래, 지나치게 흠모해온 대상을 실제로 만나면서 이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그동안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오고 있었는지 알리고 싶은 마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 좀 더 각별히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터져 나오면서 ‘최악의 사태’를 일으키는…너무 웃기지만 동시에 비극적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입니다.”


“하정우표 코미디영화를 좋아해요, ‘롤러코스터’도 좋았고. 그러나 내가 그런 빠른 호흡을 지니고 있나, 자신 없어서 여러 차례 고사하다 하 감독이 계속해서 주는 용기에 힘입어 출연하기로 했을 때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어요. 하정우표 코미디 연기에 따르지 않겠다, 오소독스하게(orthodox하게, 정통으로) 해석하고 접근하겠다! 진 프로에게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인간적으로 매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에 최선을 다했어요, 배우로서도 사심을 갖지 않고 캐릭터에 최선을 다했어요, 결과물은 끔찍하게 나왔네요.”


절대 마주치고 싶은 않은, 집요하게 불쾌한 최 실장의 탄생은 배우 김의성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캐릭터에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다. 끔찍하다 할 만큼, 정말 연기를 잘했다. 영화를 보며 궁금했다. 대중 배우로서 어떻게 관객이 끝내 미워할 수 없는 호감 한 점 남겨두지 않고, 어쩜 이렇게 순수하게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을까. 어떤 비호감 면모를 드러내도 금세 선한 눈웃음과 환한 미소로 대중의 호감을 살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가?


“(절레) 그건 아닌 것 같고요. 제 안의 그런 그런 요소들, 욕망의 요소나 이런 부분의 표출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악역이라는 건 욕망이 도덕, 양심, 상식을 이기는 거잖아요. 제 안에도 도덕이나 상식을 이기는 욕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거를 실제로 드러내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되는 건데, 극 중에서는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으니 재미이고 또 제 인생에도 도움이 된다,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생각합니다. 그 반대에서는, 양심이나 상식은 제가 지켜나가면 되는 거니까요.”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를 예리하게 파고든 영화 ‘로비’의 스틸컷 ⓒ㈜쇼박스

그렇다면, 배우 김의성에게 어째서 악역이 많이 온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선역인 주인공과 비슷한 막강 에너지를 가진 배우가 필요해서’라고 생각한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환한 웃음) 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이) 관성일 수도 있다, 제게 악역 경험이 많고 저를 보시는 분들의 시청이나 관람 경험이 쌓여 있으니까요. 악역이 툭 튀어 나왔을 때 제일 먼저 선택지에 들어있을 수 있는 배우랄까요. 그 간의 결과물들이 나쁘지 않아서 청해 주시는 것도 있을 거고요. 고정관념, 고정된 이미지도 저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저의 자산으로 생각합니다. 악역, 의식해서 선택한다기보다는 제가 쌓아왔던 독한 악역의 자산들이 효과를 발휘해서 다른 방법으로 비틀어 사용하고 싶은 분들이 늘어나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말을 설렁설렁하는 것 같지만, 매우 구조적이다. 배우 김의성에게 악역 러브콜이 무성한 이유에 대해 1) 내게도 관객‧시청자에게도 익숙해진 관성 2) 그간의 결과물들이 나쁘지 않아서 3) 악역 전문 배우라는 고정관념이 효과를 발휘해 변주하고 싶은 이들이 늘어서…와 같이 설명한다. 그것도 단순 나열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긍정적 평가→고정관념 변주’와 같이 점증적으로 발전한다. 흔히 말하는 뇌가 섹시한 남자, ‘뇌섹남’이다.


사실 들이민 첫 번째 질문은 이거였다. 언제부터 연기를 이렇게 잘했나요,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때는 몇 살 때예요? 유치한 표현에 담은 ‘리스펙’이었다.


“아직도 잘 모릅니다. 정말로 항상 회의하고 있어요. 맞나?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그런 생각, 항상 해요. 지금 하는 거는 그간 해온 경험치와 사람들의 (김의성이 연기 잘한다는) 착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이에요.”


표정과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할 수 없는 필력이 안타까운데, 멈출 줄 모르는 ‘자기 회의’의 진정성이 전해왔다. 이래서 연기를 계속해서 잘하는구나!


배우 김의성 ⓒ

배우 김의성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악역 러브콜에 대해 이런 해석도 내놨다. 동의할 수 없어서 따로 떼어 쓴다.


”저는 주연배우가 아니에요, 저는 조연을 하는 배우인데. 조연배우에게 뭔가 착하고 선한 쪽 역할들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그 선인으로서의 길이 되게 좁아서 주연배우는 주연으로서 그 길 갈 수 있는데, 조연배우에게 선역은 평면적 캐릭터가 되기 십상이라 그나마 매력을 담을 수 있는 악역을 선택하게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화가 났다. 조연하는 배우라니! 김의성의 배우 그릇 크기를 누가 그렇게 정해 놓았는가. 당연히 가능한 선역, 우리에게 발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따스한 눈망울로 빚어진 김의성표 훈남을 보고 싶다.


그전에, 이 정도 연기력에 검증받은 악역 소화력이라면, 조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호아킨 피닉스에게 주듯, ‘김의성의, 김의성에 의한, 김의성을 위한’ 피카레스크(도덕적 결함을 지닌 악인이 이야기를 이끄는) 작품이 나와도 좋지 아니한가.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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