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질 시대, 폭증하는 트래픽
망 이용료 갈등에 ISP-CP 정면 충돌
#포지티브적 해석 : 디지털 주권 확보 위한 IT업계의 성장통.
#네거티브적 해석 : 이러다 월정액만 오르는 것 아냐?
유튜브, 넷플릭스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이용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지상파 방송을 유튜브로 시청하거나 입소문난 드라마를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디즈니플러스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영상·음악·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라고 합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영상을 볼 수 있으니 편리하지만, 정작 이해 관계자들은 불편합니다. 이해 관계를 둘러싸고 OTT와 통신망 사업자(ISP)들의 불협화음이 지속되고 있어서지요. 국내 3대 ISP에는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가 있습니다.
OTT가 자동차라면, ISP는 그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텍스트 기반의 웹서핑이 중심이던 시절이라 4차선 도로만 있어도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고화질 영상과 실시간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트래픽(데이터 이동량)이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자동차 대수가 급증하면서,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도로를 8차선, 16차선으로 넓혀야 하는 상황이 된 셈입니다. 국내 유입 트래픽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국제 회선료, 전용선 추가 등 별도 비용이 발생합니다.
ISP는 도로를 확장해야 하는 이유가 특정 집단이 굴리는 차량이 급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구글, 넷플릭스 같은 대형 CP 서비스가 국내 트래픽 발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니 전송비용을 같이 부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네이버, 카카오, 웨이브 등 국내 CP들은 이런 ISP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 망 이용료를 지급하고 있으나 대표 해외 CP인 구글, 넷플릭스는 이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과학기술통신부가 발표한 ISP 데이터통신 추이를 보면 인터넷 트래픽은 매해 증가했습니다. 2015년 1691페타바이트(PB, 1PB는 1000TB에 해당하는 데이터 용량)이던 트래픽은 2022년 1만629PB로 연평균 30% 늘었습니다. 여기서 글로벌 CP가 차지하는 트래픽 비중은 많습니다. 구글은 2020년 25.9%에서 2023년 30.6%로 늘었고 넷플릭스는 이 기간 4.8%에서 6.9%로 증가했습니다.
반면 CP는 망 이용대가 지불은 망중립성에 위배된다고 주장합니다.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은 ISP가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차별 없이 전송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ISP는 CP에 전송 대가를 요구할 수 없고, 전송 가격 등에서 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요금 구조 특성상 가입자만 요금을 내는 방식이라는 점도 CP의 반박 논리입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넷플릭스 영상을 본다고 해서 넷플릭스나 구글에 따로 인터넷 요금을 내는 건 아닙니다. 인터넷 요금은 이용자가 가입한 통신사에만 내는 구조입니다. CP 측은 이러한 원칙을 근거로, 통신사가 추가 망 이용료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CP들은 자체 캐시 서버(cache server)를 한국에 구축해 속도를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캐시 서버 인터넷 서비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자와 가까운 곳에 데이터를 임시 저장해 빠르게 제공해주는 서버를 말합니다.
이에 대해 ISP는 CP가 한국에 캐시 서버를 설치했더라도 최종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구간에서는 여전히 국내 통신사의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유지·보수 부담이 발생한다고 반박합니다.
망 사용료 갈등이 심화하면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는 2020년 소송전까지 치렀습니다. 항소심까지 갔던 양측은 2023년 인터넷(IP)TV 콘텐츠를 제휴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봉합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2021년 도이치텔레콤은 독일 본 지방 법원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을 운영하는 메타 자회사 에지네트워크서비스(ENS)를 상대로 1200만 유로 지불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쾰른 지방법원은 2024년 5월 메타에 2100만 유로를 지불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국내 ISP와 해외 CP간 망사용료 갈등은 현재까지 SK브로드밴드-넷플릭스처럼 일부 당사자들만 해결했을 뿐 업계 전반으로 합의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국회에서 망 이용 계약을 체결할 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촉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망 이용대가 관련 법안 다수 발의됐으나 통과된 법안은 아직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망 사용료 법안이 해외 CP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하면서 기업간 갈등에서 정부간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등에 무역 장벽을 상술한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NTE 보고서)’에는 "2021년 이후 외국 CP가 한국 ISP에 망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요구하는 여러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며 "일부 한국 ISP는 CP이기도 해 미국 CP가 지불하는 수수료는 한국 경쟁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내 법안은 미국 기업에 불리하고, 한국 통신사 과점만 강화한다는 주장이어서 양국 정부 간 입장 조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망 이용대가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이해민 의원은 자신의 SNS에 "네이버, 카카오는 물론 메타, 디즈니플러스 등 많은 CP들은 다양한 형태로 망 이용계약을 체결하고 이행하고 있다"며 국내 논의중인 법안이 해외 CP에게만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반박합니다.
오랜 기간 쌓인 ISP-CP 갈등에 각국 정부가 목소리를 내면서 망 사용료 문제는 그 자체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양측의 규제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전되는 것은 지양하되 어느 한쪽의 협상력에 치우치지 않고 해결하려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무엇 보다 이 문제를 기업간 싸움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더 좋은 서비스 품질, 더 낮은 이용요금, 더 공정한 시장 질서를 누리는 국민 편익과 인터넷 생태계 미래가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제도 정비를 위해 규제와 시장, 민간과 공공이 한 목소리로 해법을 모색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