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킬미 힐미' 통해 치유, 이젠 아빠될 준비"(인터뷰)
다중인격 캐릭터 차도현 역 맡아 호평
"마음껏 즐겨 행복…잊지 못할 드라마"
7개 인격을 소화한 지성은 "겁이 났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캐릭터를 시도 때도 없이 넘나들었기 때문일까. 툴툴 털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지난 17일 서울 신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지성은 '킬미 힐미'의 신세기, 페리박, 안요나, 안요섭, 나나, 미스터 엑스, 차도현에게서 아직 못 벗어난 듯 "빨리 정신을 차려야겠다"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캐스팅 1순위 아니었지만 꼭 하고 싶었던 작품
12일 종영한 '킬미, 힐미'는 다중 인격장애를 앓는 재벌 3세 차도현(지성)과 정신과 의사 오리진(황정음)의 로맨스를 그렸다. 극을 이끈 사람은 7개 인격을 연기한 지성이었다. 지성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경쟁작인 '하이드 지킬, 나'도 비슷한 소재를 내세운 터라 부담이 될 법도 했다.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던 그는 신들린 연기력으로 극을 휘어잡았다. 지성의 말을 빌리자면 '마음껏 뛰어논 셈'이다. 상대 배우인 황정음조차 "지성 오빠 연기 구경하느라 대사를 잊어버렸을 정도였다"고.
"시놉시스와 대본을 우연히 보고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꼭 하고 싶었는데 처음엔 인연이 안 닿았다가 나중에 왔죠. 김진만 감독님이라면 제 진심을 담아줄 거라고 믿었어요. '킬미, 힐미'는 시청자뿐만 아니라 제 마음도 치유한 작품이에요. '너 그동안 정말 잘했다'라는 말을 제게 하고 싶습니다."
화제가 된 7개 인격 연기는 어떻게 했을까. 각기 다른 상처 때문에 만들어진 인격들이 펼치는 감정신도 상당했을 텐데. "작가님은 제가 고생한 걸 알아주셔야 합니다"라고 농담한 지성은 "7개 인격이라고 해서 큰 부담은 못 느꼈다"고 말했다.
"캐스팅이 늦게 돼서 촉박한 시간내에 준비해야 했어요. 각 인격에 담을 메시지와 진심에 중점을 뒀죠. 다만 욕심내진 않았어요. 마음을 내려놓고 버릴 건 버리고 편하게 촬영했습니다. 성적에 기대하지 않았더니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인격과 관련해선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며 웃었다. "제가 언제 여자 교복을 입고, 또 아이라인을 그리고 연기하겠어요?(웃음) 모든 인격을 정성 들여 만들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거예요."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했냐고 묻자 잠시 고민한 뒤 "얘기하면 끝이 안 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작품을 끝내면서 가장 걱정된 건 저였어요.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죠."
그러면서 그는 "7개 인격은 어린 시절 차도현이 받은 상처 때문에 생겨난 캐릭터"라며 "차도현을 중심으로 잡았기 때문에 연기하기 어렵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인격에 진심을 담았다고 재차 강조한 그는 드라마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의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치유했으면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와 명장면은 극 중 삶을 포기하려 한 요섭이한테서 나왔다.
"유독 요섭이가 짠해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가 리진의 도움으로 희망을 품게 되잖아요. 마지막회에서 요섭이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읊은 시 구절에 눈물이 났죠."
1회에서 신세기가 리진에게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이라며 오글거리는 대사를 던진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팬들과 스태프들을 만나며 '기억하세요. 이 순간을'이라고 할 정도예요. 하하."
'비밀'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춘 황정음에겐 연신 고맙다고 했다. 앞서 황정음은 "지성 오빠는 배우로서 배울 점이 많은 선배"라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함께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음이에게 '우린 무슨 인연이지?'라고 말한 적 있어요. 배우들이 두 작품을 함께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정음이가 이리저리 날뛰는 7개 인격을 잘 받아줬어요. 제가 돋보였던 건 정음이 덕분이에요.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하고 싶은데 정음이가 결혼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참을 달려온 연기 인생
1999년 '카이스트'로 데뷔한 지성은 '올인'(2003),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004), '뉴하트'(2007), '보스를 지켜라'(2011), '비밀'(2013)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채워갔다.
흥행작도 몇 편 있었고, 대중적인 인지도도 괜찮았다. 근데 뭔가 부족했다. 시청자들의 뇌리에 박힐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 없었던 것. 그렇다고 연기를 못하는 배우도 아니다. 치고 올라갈 듯하면서 주춤했던 그는 '킬미 힐미'를 통해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지성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는 당연했다.
어느덧 마흔을 앞둔 그는 내면이 성숙한 사람이었다. '하이드 지킬, 나'의 작가가 '킬미, 힐미' 진수완 작가에게 표절 문제를 제기한 것과 관련된 질문에도 덤덤했다. "같은 소재 드라마라서 말들이 많았는데 부담을 느끼거나 일부러 의식하진 않았어요. 서로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죠."
황정음의 말에서도 그의 됨됨이를 느낄 수 있다. "전 경쟁작보다 잘 됐다고 막 신이 나서 재잘거렸는데 지성 오빠는 같은 배우로서 경쟁작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정말 성숙한 오빠예요."
지성은 "나 역시 관심을 못 받은 작품을 했었기 때문에 '킬미, 힐미'가 소중하다"고 했다. "'연기대상 배우'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중요하지 않아요. 반갑지도 않고요. '내가 배우로서 존재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만 할 뿐이죠. 이번 드라마를 한 것만으로도 전 대상을 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간 다른 배우들을 칭찬하는 기사를 자주 봤다는 그는 "'나도 언젠가는 찬사를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지금 돌아보면 한참을 달려온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도 다짐했다.
"좋은 아빠 되는 게 목표"
'킬미 힐미'는 아동학대를 다뤄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모은 2000만원을 아동 학대 피해자들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주인공이자 이제 곧 아빠가 될 지성의 마음도 남다를 듯하다.
"아동 학대 장면에서 하염없이 울었어요. 요즘 아이들과 관련해서 안 좋은 일들이 생기는데 마음이 아프죠. 아이들은 아낌없이 사랑해줘야 해요. 우리가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전달해줘야 합니다. 드라마를 통해 저라도 좋은 아빠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6월에 아빠가 되는 그는 "아기가 커가는 게 눈에 보여 신기하다"며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은 급한데 시간이 안 간다"고 말했다. "아기가 나오면 눈물을 펑펑 쏟겠죠?(웃음) 꼭 훌륭한 가장이자 아빠가 될 거예요."
아내 이보영에 대한 사랑도 여전했다. 6년 열애 끝에 2013년 결혼한 두 사람은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꼽힌다.
"아내가 극 중 요나가 달리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홍대 촬영장에 몰래 왔었어요. 여학생처럼 귀엽게 뛰는 것을 보고 아내가 즐거워할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났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 가장이 고생하는 모습을 봤다면서요. 다음날부터 도시락을 싸주더라고요. 하하."
지성은 이번 작품을 통해 10~20대 젊은 여성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역 배우가 '지성 오빠라고 할까요, 삼촌이라고 할까요?'라는 질문에 저도 모르게 '오빠'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오빠'라고 부르라고 약속도 했고요. 언제 이런 아이돌급 대우를 받아보겠어요? 두팔 벌려 환영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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