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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와 한진해운 결말의 닮은 꼴은?


입력 2016.08.31 23:00 수정 2016.09.01 11:31        이강미 기자

<이강미의 재계산책> 3자 책임론 급부상...부실경영 자초했던 인물 재영입? 아직 정신 못차렸다

법정관리에 놓이게 된 한진해운 서울 여의도 본사 로비.ⓒ한진해운
올 여름 뜨거웠던 태양만큼이나 우리들의 가슴을 울컥하게 했던 영화 한편이 상영됐다. 바로 ‘덕혜옹주’다. 영화에서 친일파의 끝판왕을 보여줬던 한택수(윤제문 분)는 고종황제의 ‘문고리’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덕혜옹주를 일본으로 강제 유학보냈고, 철저한 감시속에 일제를 옹호하는 연설을 강요했는가 하면, 일본 남자와 정략결혼까지 시키면서 대한제국의 황녀가 아닌 일제의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됐다. 광복 직후 끝내 귀국을 거부당한 덕혜옹주를 향해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앞으로 조선 땅을 밟을 일은 영영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비웃으며 유유히 조선으로 건너온 한택수는 이승만 정권에서 내각대신 자리에 올랐다.

비록 극중 한택수가 영화의 극적 전개를 위한 가상인물이었다손 치더라도,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치받쳐 오르는 울분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을 것이다.

지나친 비약일까. 오늘날 대한민국 해운업계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바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이야기다.

한때 세계 해운산업을 호령했던 두 회사가 전문 경영인들의 경영상 오판과 무책임에서 비롯됐음에도 불구하고,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는 재기용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실제 현대상선은 2003년 정몽헌 회장 타계 이후 부인 현정은 회장이, 한진해운은 2006년 조수호 회장 타계 이후 부인 최은영 회장이 각각 최고경영자(CEO)로 나섰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기업 경영을 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정은 회장과 최은영 회장은 외부 경영인을 선임해야 했고, 이들 전문경영인들의 경영 오판으로 위기관리와 대응에 실패해 이 지경에 이르게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대상선의 경우 2010년 이후 대표가 6번이나 바뀔 정도로 외부에서 영입한 경영진이 자주 교체됐다. 언제 교체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경영은 불요했다. 따라서 재임하는 단기간 동안 보여주기 식의 경영에만 집착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현재의 고비용 구조를 만들게 한 장기용선계약이 그 당시에 대부분 이뤄졌다.

한진해운도 마찬가지다. 외부 영입 경영진의 문제가 더 심각했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의 타계로 갑작스럽게 경영권을 승계한 최은영 전 회장은 글로벌 시황 악화에 속수무책이었다.

한진해운은 2009년 외국계 은행 출신의 금융인인 김영민 씨를 대표로 선임했다. 재무적인 부분을 개선시켜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선임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는 패착을 낳게 된 결과로 다가왔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반짝 효과가 나타난 것을 경기 회복의 신호로 오판하고, 호황에 대비하겠다는 목적으로 비싼 가격을 주고 선박을 대거 빌리는 악수를 둔 것은 경영 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현재 1만3000달러 수준이면 충분할 용선료를 3만~4만달러까지 지불하게 하는 등 유동성 부족 위기를 자초했다. 김영민 사장이 취임할 당시 155%에 불과했던 부채비율은 2013년 물러날 때 1445%에 달했다.

이처럼 회사 경영과 재무상태를 망쳐놓고 김영민 전 사장이 나가면서 받은 퇴직금은 무려 연봉의 5배 수준이었던 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덕적 해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최 전 회장은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긴급 구조요청을 하게 됐고, 조 회장은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을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대한항공 등을 통해 2년간 약 2조원을 투입하면서 한진해운 심폐소생술을 펼쳤다.

알짜 자산이었던 에쓰오일 지분 28.41%(3198만3586주)를 전량 매각해, 한진에너지 차입금 상환 등을 제외하고 남은 9000억원 대부분을 한진해운 회생에 사용했다. 한진그룹 차원에서도 대한항공 유상증자 등을 통해 총 1조2500억원에 달하는 자금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같은 자구노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채권단이 추가지원 불가 방침을 고수하면서 법정관리를 받게 될 처지가 됐다.

더 큰 문제는 경영위기를 불러온 장본인들이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거나,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재기용되고 있다는데 있다.

실제 현대상선 채권단은 현대상선의 부실경영을 자초했던 인물을 최고경영자로 재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로 유창근 인천항만공사 사장이다. 유 사장은 현대상선이 한창 유동성 위기로 전락하기 시작했던 2012년부터 2013년까지 2년간 현대상선 사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채권단은 단지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재영입하려고 하고 있다.

최은영 전 회장은 한진해운 부실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최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재산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이 1850억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해운 자구책 마련 과정에서 유동성 확보가 간절했던 한진해운을 외면했다. 오히려 경영권을 넘기면서 싸이버로지텍, 유수에스엠 등 그룹 내 알짜 계열사를 챙겼고,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를 유수홀딩스로 바꿔 정보기술(IT) 사업과 커피 프랜차이즈 등 외식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유스홀딩스는 한진해운 사옥을 소유해 매년 140억원에 달하는 임대료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정부나 채권단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법정관리 시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만큼 한진해운으로서는 파산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와 채권단은 조선업에는 10조원이 넘는 유동성 자금을 투입하면서 해운업에는 자체적인 해결을 요구하면서 높은 잣대를 들이댔고, 결국 한진해운만 유탄을 맞아 법정관리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최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와 채권단, 감독기관인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이다.

경영상 오판은 회사의 경영과 재무상태를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국가 기간산업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만들었다. 국내 대표 해운 선사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들이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강미 기자 (kmlee502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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