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3차 남북정상회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보여준 북한의 '부채의식'


입력 2018.09.19 11:28 수정 2018.09.19 13:58        박영국 기자

리용남 북한 내각 부총리, 현 회장에 각별한 예우

대북사업으로 어려움 겪은 현대그룹에 '경협 파트너 역할' 재확인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왼쪽 두 번째)가 18일 인민문화궁전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 네 번째) 등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에 포함된 경제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리용남 북한 내각 부총리, 현 회장에 각별한 예우
대북사업으로 어려움 겪은 현대그룹에 '경협 파트너 역할' 재확인


“현정은 회장 일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리용남 북한 내각 부총리가 지난 18일 남측 경제 분야 특별수행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건넨 말이다.

이날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우리 경제인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짧은 인사가 오갔지만 리 부총리는 유독 현 회장에게 각별한 태도를 보였다. 김 보좌관이 “말 안 해도 잘 아시겠지만, 현정은 회장입니다”라고 소개하자 북측 인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친근함을 표했다.

자리 배치도 리 부총리를 바로 마주보는 자리, 즉 상석에 경제단체를 대표하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함께 현 회장이 나란히 앉았다. 재계 서열과 무관하게 북한에서 현대그룹이 갖는 위치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이날 리 부총리의 발언은 현대그룹에 대한 북한의 ‘부채의식’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왕자의 난’을 거쳐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등으로 계열사들이 분할된 이후에도 그룹의 ‘적통(嫡統)’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사세를 유지했던 현대그룹이었으나 지금은 재계 서열을 논하기도 힘든 중견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그 배경에는 대북사업이 있다.

유동성 위기로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를 잃는 등 어려움을 겪던 현대그룹은 2003년 고(故) 정몽헌 전 회장을 잃고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정 전 회장은 대북송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 조사를 받던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에는 금강산에서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 초병이 쏜 총탄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금강산 관광 사업 주체인 현대그룹은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물론 금강산 관광지구 내 해금강호텔, 온정각, 부두시설 등 현대그룹이 보유한 자산까지 모두 동결됐다.

2016년에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해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현대그룹은 그나마 유지해 오던 대북사업을 사실상 접어야 했다.

이 시기 해운 구조조정 사태를 겪으며 현대상선은 물론 현대증권까지 잃고 그룹의 주요 수익을 현대엘리베이터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대그룹의 현재 모습이다.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이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다양한 대북 사업을 벌이며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준 현대그룹이었지만 결국 대북 사업을 원인으로 몰락하게 된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현대그룹과 현정은 회장에 부채의식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

부채의식이 있다면 갚으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하다. ‘일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 남북 경협이 진행될 경우 현대그룹의 재기에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현대그룹은 이미 북한의 주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0년 8월 고 정몽헌 회장이 북측 아태평화위원회,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7대 SOC 사업을 30년간 보장하는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한 게 지금까지 유효하다.

당시 합의서에 따라 현대그룹은 북한 내 ▲전력사업 ▲통신사업 ▲철도사업 ▲통천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 수자원 ▲백두산·묘향산·칠보산 및 명승지 관광사업 등 7대 SOC 사업 개발에 대한 독점권을 앞으로도 12년간 보유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 더해 북한측이 현대그룹에 계속해서 신뢰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앞으로 남북 경협에서 현대그룹이 주도적 역할을 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북측은 지난 8월 3일 현정은 회장의 방북 당시에도 현대그룹을 ‘첫사랑’으로 표현하는 등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왔다”면서 “이번 리용남 내각 부총리의 발언도 그 일환으로 앞으로도 우리와 계속 가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