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김여정 사실상 '북한 2인자'"
전문가 "위임통치 아닌 분야별 역할분담"
'김정은 건강이상설' 주목하는 분위기도
국정원, 위임통치 근거로 '스트레스 경감' 언급
20일 국정원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한을 일부 이양받아 '위임통치'를 벌이고 있다며, "사실상 북한 2인자"라고 평가했다.
여야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비공개 업무보고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이 이같이 보고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김정은 위원장의 권한이 김여정 부부장에게 가장 많이 이양됐다면서도 후계 구도 확립을 뜻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과 같은 집단지도체제 도입 가능성에도 선을 그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여정 부부장은 대남·대미 정책 권한을 상당 부분 이양받았다.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는 경제 분야에서 일부 권한을 넘겨받았다. 군사 분야에서는 신설된 군정지도부의 최부일 부장과 전략무기 개발을 전담하는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리병철에게 권한 일부가 위임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대남 대적사업 권한을 김여정 부부장에 넘겼으며, 담화문 형식으로 대미 메신저 역할까지 맡긴 바 있다. 경제 분야에 대해선 집권 초부터 내각 주도의 정책 실행을 여러 차례 주문해왔다. 과학인재 육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핵·미사일 개발의 일동공신으로 꼽히는 리병철 부위원장을 고속 승진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해 국정원의 '위임통치' 진단은 기존 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위임통치 표현이 '비상체제', 즉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암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용어 선택이 서툴렀다는 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위임통치란 일정 기간 일정 부분의 권력을 넘기는 것"이라며 "위임통치는 정상체제가 아닌 비상체제 시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김 위원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유일영도 체제인 북한 특성을 감안해볼 때 "정치는 김 위원장이 직접 관장하고 경제·사회·군사·대외 등 분야별로 책임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것은 위임통치가 아니라 역할분담"이라고 평가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국정원이 언급한 내용이 "위임통치라기보다 권한 이양·배분"이라며 "권력을 나눠주는 게 아니고 최고 권력을 유지하면서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수령 △노동당 △인민대중으로 이어지는 '전일체계' 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의 권한 이양을 권력·지도체계 개편 포석으로 해석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 전 원장은 "국정원이 용어를 선택하며 문제가 될 거라 판단했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한국 정보 당국이 김 위원장에 대해 왈가왈부한 데 대해 북한이 반발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일 가능성
국정원 보고에서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빠져
일각에선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김 위원장이 지난 7월 이후 13차례나 공개활동을 벌여왔지만 △고도 비만 △흡연 △음주 △가족력인 심장질환 등 건강상의 문제로 업무 과중을 덜기 위해 권한 이양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위임통치의 근거로 '스트레스 경감'을 언급해 김 위원장 건강 상태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앞서 대만 정보 당국 수장은 지난 5월 "김정은이 아프다" "병이 난 게 맞다"고 밝힌 바 있으며,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은 지난 6월 "김정은 건강 상태가 의심스럽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국정원 보고 과정에서 김 위원장 건강이상과 관련해 "얘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위임통치와 김 위원장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전혀 없는 것 같다"며 "실질적으로 여러 첩보 통해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