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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성화·행동화한 유권자의 주인의식


입력 2021.04.12 09:00 수정 2021.04.12 07:36        데스크 (desk@dailian.co.kr)

정권 총력전으로도 참패 못 면해

독선·독단의 덫에 걸려든 민주당

국민의힘, 승리에 취해 있다가는

4.7 재보궐 선거일인 지난 7일 부산 수영구 광안3동 제3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이긴 측이나 진 측이나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이 워낙 커서 국민의 분노와 원망이 분출하고 있다는 것이야 누구의 눈에도 뚜렷했다. 그러나 표심(票心)은 때로 심한 가변성을 드러낸다. 예상 밖의 결과가 속출하는 것이 바로 선거다. 그래서 뚜껑을 열기 전까지 선거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정권 측은 저지른 게 많아서 위태롭게 여기긴 했던 모양으로 대통령까지 표몰이 행각에 나섰다. 그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예정지를, 선상(船上)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뛴다”고 했다(그 다음날, 그러니까 지난 2월 2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공공연한 선거개입 행보에 대해서 중앙선관위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직무수행 활동의 일환으로 지역을 방문한 것”이라고 정당화시켜줬다. ‘한통속’이라는 세간의 시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 준 셈이다.


정권 총력전으로도 참패 못 면해


서울의 경우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흠집 내기에 올인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대상지 투기의혹 사건으로 들끓는 민심을 오 후보의 ‘내곡동 땅 셀프 보상’이라는 스토리로 맞불 놓기를 획책한 것이다. 별로 효과를 내지 못하자 ‘생태탕·페라가모 로퍼 논란’이라는 걸 연출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까지 ‘생태탕’을 입에 달고 다녔다.


정부·여당은 21대 총선의 압승을 가능하게 했던 ‘코로나 지원 자금 살포’ 수단도 동원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문 대통령은 선거 지원성 발언을 자제하지 않았다. 그는 2월 19일 민주당 지도부와 가진 간담회에서 ‘국민 위로 지원금’을 운위했다.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지원금, 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 온 국민이 으쌰으쌰 힘내자는 차원이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5차 ‘헬리콥터 머니’ 퍼붓기를 예고하면서도 선거용은 아니라고 했다. ‘우기면 진실이 되는’ 요술에 스스로 심취한 때문일까?


이 같은 정권의 총력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참패 당했다. 국민의힘은 서울·부산 시장 외에도 기초단체장 2석, 광역의원 5석, 기초의원 6석 확보했다. 반면 민주당은 광역의원 2석, 기초의원 2석을 얻었을 뿐이다(무소속 광역의원 1석, 기초의원 1석).


유권자들의 ‘주인의식’이 확고해진 결과다. 머슴이 주인행세를 하는 뒤틀리고 비비꼬인 무늬만의 민주정치를, 삶의 현장에 불러내 살아 있는 인식·행동강령으로 정착시키겠다고 작심한 유권자들이 주도하는 시대는 이렇게 열렸다. 조종당하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내고 이끄는 능동적 존재로서의 국민적 자각이 표로 나타난 것이다.


독선·독단의 덫에 걸려든 민주당


일상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 돈 가지고 왜 당신이 생색내? 국민은 당신들이 주는 돈을 허겁지겁 받아먹고 표를 주는 매표인이 아니야. 우리가 바로 당신들에게 지위와 권한과 월급을 주는 주인이야. 앞으로 주인 앞에서 위세 부리지 마!”


민주당은 패인 분석에 한창인 모양이던데, 서로 시각이 달라 갈등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시각이 다르다기보다는 이해(利害)를 달리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겠다. 게다가 골수 친문세력은 일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다. 자기들이 만든 논리·질서 구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니 벗어날 기미만 보여도 언어적 맹폭(猛爆)을 가하며 ‘파문(破門)’의 권력을 행사한다.


그들이 민주적 의식구조로 재무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들의 교조적 독선주의가 상황을 장악하고 지배하게 되면 민주당은 보궐선거 전의 의식과 체제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더 큰 패배다. 그걸 뻔히 내다보면서도 빗장을 더 단단히 거는 것이 이런 조직의 생태라고 할 수 있다. 독선 독단의 덫에 스스로 걸려드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실로 오랜만에 설욕의 시간을 누리게 됐다. 그런데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성공은 교만을 낳고 교만은 패망을 예비한다. 실패관리보다 오히려 성공관리가 더 어렵다. 저마다 자신의 공(功)을 자랑하며 목소리를 키운다. 우쭐거리는 분위기가 넘쳐나고 몫 다툼이 치열해진다. 그 끝에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패배라는 이름의 괴물이다.


이미 집단 교만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송언석이라는 당 소속 의원이 개표 상황실에 자신의 좌석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사무처 국장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욕설을 퍼부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으로, 기재부 차관 출신의 재선의원이다. 자기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당을 지켜온 사무처 간부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주고 폭력까지 휘둘렀다. 비난이 거세지자 사과문을 들고 직접 사무처를 찾아갔고, 당 사무처측은 선처를 호소한 모양이다.


국민의힘, 승리에 취해 있다가는


여론이 악화하자 당 측은 윤리위에 회부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런 태도가 집단적 기강해이와 교만의 한 단면이다. 당 지도부는 바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즉각적으로 당헌·당규 상의 절차를 거쳐 엄단하겠다는 뜻을 밝혔어야 했다. 당 사무처도 ‘선처 호소’운운할 일이 아니다. 피해자 측이니까 용서할 권리를 가졌다는 의식이라면 당의 쇄신은 백년하청이다.


국민의힘이 승리한 데는 2030세대의 지지가 큰 몫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지지를 통해 국민의힘은 그간의 패배의식을 떨치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들에 대한 갚음이 있어야 한다. 청년 세대에 대한 정책적 지원 및 응원책을 앞장서 마련하는 게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우선하는 것이 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연설할 청년들을 모으는 건 쉬웠다. 어려웠던 건 아저씨(당내 인사)들이 ‘내(연설) 자리도 내놓으라’ 해서 싸워야 했던 부분이다. 어제 개표상황실에서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송언석 의원이 자기 자리가 없다고 당직자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실 이날도 원래 기획은 개표상황실에 오세훈 후보, 김종인 위원장만 앉히고 좌우에는 연설을 했던 2030세대로 채우자는 거였다. 그런데 (당으로부터)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준석 선대위 미디어본부장이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참신하고 멋있는 기획을 지도부는 당연히 고맙게 수용했어야 했다. 그런데 ‘단칼’에 물리쳐버렸다. 언제 넘을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는 이 당의 한계다. 이런 의식과 태도를 떨쳐버리지 못하면서 내년 대선 승리를 기대한다는 것인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잘못이 있다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라고 했다(논어 자한편). 원래 반성과 사과라는 것을 모르는 문 정권은 그렇다 치고, 그런 행태를 비판해오던 국민의힘이 닮은 모습을 보이는 게 새삼 놀랍다. 실천이 안 되면 시늉이라도 할 일이다. 흉내를 내다보면 배우게 되고 진심으로 행하게 된다. 기실 배움의 시작은 흉내 내기다. 잊지 말기를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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