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일고(一考, 한 번 생각해 봄)이다. 작품이 좋으면 기본 줄거리와 캐릭터, 주제 의식, 미장센 외에도 여러 생각해볼 거리와 기회를 얻는다.
데뷔 35년 차 배우 송강호가 처음으로 선택한 드라마라는 측면에서 진즉부터 화제가 된 ‘삼식이 삼촌’(극본·연출 신연식, 제작 슬링샷스튜디오·아크미디어, 채널 디즈니+).
제목만 보고 구수한 얘기인 줄 알았더니 1950년대 전후를 배경으로 우리가 일본제국주의에서 해방한 이래 한국전쟁을 거친 후 온 국민이 밥 세 끼 먹는 게 지상목표인 상황에서, 정치·경제의 민주화와 거리가 먼 새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불쑥 내민다.
가상의 이야기로 휴먼 스토리를 펼치나 했더니 한국 현대사의 중대 사건인 군사쿠데타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어떻게 태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의식과 어긋난 추앙도 없고 날 선 비판도 없이, ‘꿈으로 포장한 위선’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자연이 그러하듯,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유장하게 한국 현대사의 태동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인다.
9화까지 공개된 지금, 그 폭에 끝이 없다. 감독 신연식은 마치 중국 현대소설의 효시라 불리는 명작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이 된 듯, 영화 ‘대부’ 시리즈와 ‘플라워 킬링 문’의 연출자 마틴 스코세이지가 된 듯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한 가운데 실화 바탕의 역사를 사람 이야기로 펼쳐냈다.
지금 이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이 그 실존 인물인가, 여기 이 문제의 사건이 역사적 그날인가, 몰라도 좋다. 신연식 감독이 탄탄하게 집을 짓고, 정밀하게 실내장식 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를 통해 대략 과거의 우리가 그렇게 살았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어른 배우 어린이 배우 할 것 없이 또 주·조·단역 할 것 없이 혼신으로 열심인 배우들의 연기, 미장센 가득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소품과 복고풍 의상을 보는 재미도 톡톡하다.
턱턱 걸리지 않고 강물처럼 흐르는 묵직한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니, ‘저 배우 연기는 왜 저래’ ‘아니, 이야기 전개는 왜 이래’ 화날 일 없다 보니, 딴생각할 기회도 얻는다.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송강호는 왜 명배우로 불리는가, 사람들은 왜 송강호의 연기를 잘한다고 하는가에 관한 궁리였다. 다른 요소 다 제치고 그를 택하게 된 건 배우 송강호의 흡인력이 크게 작용하고, 타이틀 롤이라는 유리한 지점이 부가적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삼식이 삼촌, 박두칠을 연기하는 송강호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외형적 요소와 몸의 각도, 걸음걸이도 그 어느 때보다 유심히 보고. 얼굴 근육을 어떻게 쓰는지, 눈동자의 움직임과 눈빛은 장면과 감정마다 어떻게 다른지도 관찰하고. 아이가 어려 아직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할 때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미리 알아차리려 세심히 살피듯 그렇게 배우 송강호를 뜯어 봤다.
와! 이렇게까지 들여다보는데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저 자연스럽다. 맞다, 가장 좋은 연기나 연출은 무엇을 특출나게 잘했다는 것보다 연기하고 연출한 표가 나지 않는 것이었음을 상기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집요해서, 그래도 뭔가 다른 배우보다 큰 만족을 주는 무엇을 발견하고픈 욕구가 솟았다. 그리고 드디어 찾았다. 서두에 밝혔듯이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 생각이고 결론이다.
그것은 발화(發話, 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현실적인 언어 행위)에서 발견됐다. 특히 말끝, 문장 끝의 발화를 송강호가 명배우가 된 이유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이 무슨 엉뚱한 얘기인가, 혀를 끌끌 찰 독자분들을 생각하면 필자도 웃음이 나지만. 진지한 진심이다. ‘배우 송강호가 다른 배우들보다 더 잘하는 게 그래서 뭐야’를 생각하며 드라마를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멈춰 보고 흘려 보는 가운데, 필자가 알아차렸다기보다는 송강호가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쉽게 표현하기 위해 하나의 문장을 배우가 연기한다고, 말한다고, 발화한다고 할 때. 배우 송강호는 목소리가 점점 폭발적으로 커지는 문장이든, 점점 소리가 잦아드는 문장이든, 정색하고 또렷하게 말하든 나직이 숨소리처럼 속삭이든, 말끝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많은 배우는 말끝이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목구멍 안으로 삼켜지기도 하는데, 송강호는 입 밖으로 공기를 밀어내 방출했다. 덕분에 발음은 더욱 또렷이 들리고, 입 밖으로 나선 소리가 공기를 쨍 가르면서 그가 표현한 인물이 장면에서 중요해 보이고 배우 송강호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송강호의 방식으로 발화의 장단과 고저, 소리로 공기를 가지고 놀지는 않아도 ‘삼식이 삼촌’에도 어미나 말끝을 내뱉는 배우들이 있고. 그중에 그가 아직은 무명의 단역이어도 배우로서 선명해 보였다. ‘삼식이 삼촌’ 밖 내로라하는 여러 명배우를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고, 영상 장면을 확인해 보니 말끝을 입안으로 끌어들이거나 삼키지 않는다.
배우의 표현법에 있어 발화를 중시하는 개인적 취향에 따른 구분과 의견일 뿐임에도 서술하여 소개한 이유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로 추천하기 위함이다. 좋아하는 배우여도 좋고, 아직은 팬이 아니어도 왠지 마음 가는 배우가 있다면 눈길을 오래 두어 보자. 그 배우도, 그 작품도 몇 배는 더 깊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