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경험 풍부한 경영진 대부분 유임 LG 유플러스 CEO만 교체
LG전자‧LG화학 사업본부장 신규 보임으로 일부 세대교체
신규 임원 중 23% 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 발탁
취임 6년차를 맞는 구광모 ㈜LG 회장이 2025년 임원 인사에서 펼친 용병술은 ‘안정’속 ‘혁신’이었다. 대외 경영 불확실성을 감안해 주요 계열사 CEO들을 대부분 유임하되, 연구개발(R&D) 현장에서 뛸 야전부대장들로 전문성을 갖춘 임원들을 대거 발탁해 미래 성장을 위한 변화의 속도를 높일 채비를 마쳤다.
LG그룹 지주회사인 ㈜LG와 각 계열사는 21일 이사회를 열고 2025년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임원 인사는 ‘미래 성장’을 위해 ‘변화’의 속도를 높인다는 기조 아래 ABC(AI·바이오·클린테크)를 중심으로 ‘미래 준비’를 철저히 하며, 각 분야에서 역량과 성과를 입증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지난 5년간의 임원인사에서 비교적 큰 폭의 CEO 세대교체가 이뤄졌던 것과 달리 이번 인사에서는 7곳의 계열사 경영진이 ‘현상유지’됐다.
권봉석 (주)LG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조주완 LG전자 사장,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 문혁수 LG이노텍 부사장이 모두 자리를 지켰고, 현신균 LG CNS 부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회사측은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와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 감안해 사업 경험이 풍부하고 성과와 역량이 입증된 경영진 대부분이 유임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점쳐졌던 조주완 사장과 정철동 사장은 기존의 직위를 유지했다.
이같은 인사 방향은 그동안 빠른 속도의 세대교체를 이룬 상황에서 앞으로는 조직 안정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018년 구 회장 취임 당시 자리에 있던 부회장 6인방(권영수·박진수·조성진·차석용·한상범·하현회)은 지난해 권영수 부회장을 마지막으로 모두 LG를 떠났다. 현 계열사 경영진은 모두 구 회장 취임 이후 CEO로 데뷔했거나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들이다.
구 회장의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보좌할 권봉석 부회장과 구 회장이 취임 직후 영입한 신학철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당분간 부회장 숫자를 늘리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40대의 젊은 총수인 구광모 회장 체제의 LG그룹에 다수의 부회장이 포진하는 체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2017년 9명에 달했던 부회장단이 정의선 회장의 수석부회장 취임(2018년)을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다가 정 회장의 매형인 정태영 현대카드대표이사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2020년 정 회장의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부회장 승진인사가 없다가 지난 15일 사장단 인사에서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을 완성차담당 부회장으로 내정했다.
이번 LG그룹 인사에서 유일하게 CEO가 교체된 곳은 LG유플러스였다. 황현식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홍범식 (주)LG 경영전략부문장 사장이 신임 LG유플러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홍 신임 대표이사는 모니터그룹, 베인앤컴퍼니 등 전략 컨설팅사에서 축적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차원의 신성장동력인 ABC의 전략 수립 및 실행을 추진해 왔다. 앞으로 LG유플러스에서 사업전략 고도화 및 사업 체질 개선을 주도해 나갈 예정이다.
LG전자와 LG화학에서는 사업 경쟁력과 미래 신사업 강화를 위한 사업본부장 신규 보임도 이뤄졌다. LG전자는 ES(Eco Solution)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신임 본부장에 이재성 부사장을, LG화학은 석유화학사업본부장과 첨단소재사업본부장에 각각 김상민 전무와 김동춘 부사장을 선임하는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재성 LG전자 부사장은 에어솔루션 분야 R&D, 상품기획, 마케팅, 영업을 두루 경험한 핵심 인재로 꼽힌다. 앞으로 ES사업본부를 이끌며 냉난방공조(HVAC)와 전기차 충전(EV Charger)의 사업 경쟁력을 업계 최고로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김상민 LG화학 전무는 마케팅, 신사업, M&A 등 다양한 직무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젊은 리더십으로 석유화학사업본부의 사업 체질 개선을 주도해 나갈 예정이다.
김동춘 LG화학 부사장은 전자소재 사업 및 전략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첨단소재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연구개발 파이프라인 강화를 주도해 나갈 예정이다.
전체 임원 승진 규모는 121명으로 지난해 139명 대비 크게 줄었다. 신규 임원 승진 숫자도 86명으로 지난해 99명보다 감소했다.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도록 임원 조직을 슬림화 해 구조적 경쟁력 강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처럼 전체 임원 규모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신성장동력 육성 및 대내외 리스크 대응을 위한 전문가 집단 구축 노력이 두드러졌다. 이번 인사에서 R&D 분야 신규임원 21명이 발탁됐으며, 이들을 포함한 LG그룹 전체 R&D 임원 수는 역대 최다인 218명을 기록했다.
신성장동력인 ABC 분야 리더도 대거 발탁했다. 전체 신규 임원 중 23%에 해당하는 28명을 ABC 분야에서 발탁했다.
특히, AI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연구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80년대생 3명을 신규 선임했다. LG AI연구원 이문태 수석연구위원(상무)과 LG AI연구원 이진식 수석연구위원(상무), LG유플러스 조현철 상무가 이에 해당한다.
글로벌 경쟁 격화에 따른 특허 관리 체계 구축과 특허 조직의 역할 강화를 위해 LG전자 조휘재 부사장, LG에너지솔루션 이한선 전무 등 특허 전문가 2명의 승진 인사도 진행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 대관업무 역량도 강화했다. LG화학은 북미 외교 전문가로 꼽히는 고윤주 전 제주특별자치도 국제관계대사를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 전무로 영입했다. 고 전무는 앞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 시절 외교부에서 북미 외교를 맡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