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美 반도체 보조금 연내 확정지을지 관심
대부분 미 본토 투자…파운드리 첨단 공정 경쟁 심화
보조금 딴지거는 트럼프…업계 "보조금 확정해도 실제 집행 의문"
TSMC, 인텔에 이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이하 마이크론)도 반도체 보조금을 확정지었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바이든 대통령 임기 내 삼성전자의 보조금 확정에 쏠려 있다. 삼성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2나노(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기술력 제고에 사활을 걸 방침으로, 정부의 적기 지원사격을 필요로 한다.
11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10일(현지시간)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보조금 61억6500만 달러(8조8012억원)를 최종적으로 확정지었다.
이 자금은 뉴욕주 클레이에 건설 중인 2개의 팹(46억 달러),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건설 중인 1개의 팹(15억 달러)에 각각 투입된다. 뉴욕주 공장은 각각 2028년과 2029년에, 보이시 공장은 2026년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한다.
마이크론은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을 생산하는 미국 내 유일한 기업이다. 미 정부는 마이크론이 2035년까지 미 첨단 메모리 칩 제조 점유율을 2% 미만에서 10%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TSMC와 인텔도 각각 66억 달러(9조4479억원), 78억6500만 달러(11조2587억원)의 보조금을 확정해 내년도 투자 고삐를 조일 수 있게 됐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미 정부로부터 잇따라 보조금을 수령하기로 하면서 업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예정대로 보조금을 확정지을지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미 상무부와 64억 달러(9조1616억원) 규모의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구속력이 없는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했다. 같은 달 PMT를 체결한 마이크론이 8개월 만에 결론을 낸 것을 미루어 볼 때 삼성도 조만간 보조금 지급이 확정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은 보조금을 토대로 미 본토 투자를 늘릴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투자를 기존 170억 달러(24조3304억원)에서 400억 달러(57조2480억원)로 2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4nm와 2nm 공정을 위한 첨단 팹을 추가로 건설하고 3D 고대역폭메모리(HBM)와 2.5D 패키징을 위한 패키징(후공정) 시설을 짓는다. 첨단 연구개발(R&D) 시설 역시 들어선다.
삼성을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보조금을 미 생산거점에 투입할 예정이어서, 미국은 머지 않아 최첨단 반도체 생태계로 탈바꿈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2nm 이하 공정이 미 본토에 몰리게 됨에 따라, 글로벌 파운드리 3사의 수주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기술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연말까지 18A(옹스트롬, 1.8nm급) 제조 준비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팻 겔싱어 전 CEO는 11월 보조금 확정 당시 "이미 인텔 3가 대량 생산되고 있고, 내년 출시될 인텔 18A를 통해 최첨단 반도체가 다시 한 번 미국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인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보조금(66억 달러)을 확보한 TSMC는 애리조나에 피닉스 1·2공장을 짓고 있으며 3공장을 위해 250억 달러를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1공장은 내년 상반기 가동 예정으로 4nm 반도체 칩이 생산된다. 2공장에서는 3nm 뿐 아니라 차세대 나노시트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2nm 반도체도 생산한다. 최근 TSMC의 2nm 수율(양품 비율)이 6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팹 양산 일정은 더 앞당겨질 수 있다.
특히 TSMC는 내년도 투자 규모를 늘리며 경쟁사를 견제하고 있다. 대만 매체에 따르면 TSMC는 글로벌 시장에 10개의 신규 공장을 설립할 예정으로, 2025년 시설 투자액만 340억~380억 달러(48조~5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사상 최대치였던 2022년(362억9000만 달러) 수준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첫번째 테일러 공장에서 2026년부터 2nm 및 4nm 반도체 생산을 계획하고 있어, 경쟁사 수준의 파운드리 양산 기술 확보가 요구된다. 삼성은 최근 연말 인사에서 파운드리 수장을 전격 교체하는 등 기술력 제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진만 신임 파운드리 사업부장(사장)은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타 대형 업체에 비해 뒤처지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2nm 공정의 빠른 램프업(생산량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또한 10nm 이상 성숙 공정에서는 고객사를 추가로 확보해 수익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삼성은 2028년까지 파운드리 고객사를 200여 곳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같은 파운드리 3사의 야심찬 계획이 돌발 변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1월부터 들어서는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지원법과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보조금 지급을 줄곧 비판해온터라, 해당 정책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에서 보조금을 확정했다 하더라도 트럼프 정부에서 집행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인텔 등 자국 기업에게는 보조금을 주려고 하겠지만 TSMC, 삼성 등 해외 반도체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삼성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공장을 세울 예정으로, 지난 8월 4억5000만 달러의 보조금과 5억 달러의 대출, 최대 25%의 세제혜택을 제공받는 내용의 PMT를 미 정부와 체결했다.
국내 기업들이 모두 미 투자를 확정지은 상황에서 이같은 불확실성이 가시화될 경우 투자 전략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보조금을 철회하는 초강수를 두게 되면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설비 구축 정책에 제동이 생기게 되는 만큼, 제도는 유지하되 내용 측면에서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으로 미 현지 기업에 대한 지원 비중을 늘리거나 동맹국을 대상으로 한 가드레일 조항 및 보조금 지원에 대한 추가 조건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산업연구원은 '미국 대선 향방에 따른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트럼프 집권 시 "자국 기업 편향 지원 강화에 더해 새로운 협상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지만 국가 전략상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된다"면서 "기존 보조금 대비 투자금 확대 또는 기존 투자금 대비 보조금 축소"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기업평가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산업별 영향' 보고서를 통해 "지원금 축소나 현지 투자에 대한 요구조건 강화는 생산설비 투자자금 및 운영비용 증가에 따른 수익성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