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전기차 전환 과제와 중국 브랜드의 습격
100년 역사 있대도… 판매 악화에 무너지는 전통 브랜드들
韓·中 등 '자동차 못 만든다' 무시하던 업체의 반격
전세계 자동차 시장 재편, 지금부터 시작… "철저한 준비 필요"
#포지티브적 해석: 기득권 뚫은 언더독의 반란, 넓어지는 소비자 선택권
#네거티브적 해석: 중국이 전기차 패권 쥔다면… 미래는?
'전기차' 라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한 이후, 국내 자동차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를 꼽자면 단연 '중국'이 아닐까요. 모든 업체가 너도나도 전기차를 만들기 시작한 약 3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줄곧 오르내리는 걸 보면 중국의 기세가 무섭긴 한가 봅니다.
실제로 '캐즘(일시적 정체기)'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쉽지 않은 전세계 전기차 시장이 매년 성장하는 것을 보면 실감이 납니다. 테슬라 마저도 판매량이 줄어드는 와중에 중국 업체들은 눈에 띄는 성장세를 그리고 있어서죠.
올해(1~10월) 전세계 전기차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3.7% 증가한 1355만6000대를 기록했는데요. 전기차 왕좌로 불리던 테슬라는 전년 동기(144만대) 대비 1.1% 줄었고, 현대차그룹도 같은 기간 3.4% 역성장했습니다. 반면 중국 BYD는 310만7000대를 팔아 무려 36.5% 늘었고, 중국 지리그룹 역시 총 105만4000대를 판매해 고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미래 자동차로 평가받는 전기차 시장에서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중국 업체의 선전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동차 산업으로 부귀 영화를 누렸던 미국과 유럽이 중국 전기차에 고관세를 매기며 으르렁거리는 이유도 새삼 이해가 가는 대목이죠.
열심히 투자해 밀어붙였던 전기차가 기대보다 안 팔리는 상황에서 중국은 무슨 수로 나홀로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답은 지독한 원가 절감에 있습니다. 전기차 가격 상승의 주범인 배터리의 원료를 싼값에 공급받아 저렴한 전기차를 그 어떤 업체들보다 빨리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겁니다.
특히 배터리 음극재의 주원료인 흑연의 경우 중국이 전세계의 99%를 장악하고 있는데요. 글로벌 업체들은 수입해서 써야하는 원료를 중국 업체들은 자국에서 싼 값에 갖다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전세계 전기차 1위 업체로 올라선 BYD의 경우 전기차를 만들기 한참 전부터 배터리를 만들던 업체였는데요, 이미 고도화된 배터리 기술을 자사 전기차에 탑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가격에서 만큼은 중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들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당장은 전기차 수요가 기대만큼 늘지 않아 다행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전기차 전환을 예고했던 몇몇 브랜드들이 당장 잘 팔리는 내연기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도 지금 중국에 밀려 망하느니, 수익이라도 챙기자는 생각이 주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업체들의 폭발적인 성장에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선 BYD가 기존 대형 브랜드를 잡아먹을 것이라는 무서운 예고가 계속 흘러나왔는데, 이 말도 서서히 현실이 되는 모양입니다. 오랫동안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기득권으로 여겨졌던 유럽 브랜드들의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어선데요.
심각한 위기에 빠진 폭스바겐 그룹이 대표적입니다.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들이 대거 포함돼있어 위기설이 있을리가 만무했던 그룹이죠.
그런데, 이런 폭스바겐그룹이 독일 내 3개의 공장을 폐쇄하고, 남은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독일 태생 브랜드로서 현지 공장을 없앤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로서도 굉장한 타격이죠. 근로자들의 대량 해고가 불가피한 만큼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폭스바겐 노조도 들고 일어선 상황입니다.
이번 사태가 심각한 건 단순히 중국 전기차 성장에 따른 위기가 아니라는 점인데요. 전기차 경쟁도 문제지만,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성장에 따라 중국 내 수요가 크게 줄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등은 중국 시장에서 아주 사랑받던 브랜드거든요.
내연기관 시대엔 자국 업체의 존재감이 없어 유럽 브랜드들을 소비하던 중국 소비자들이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며 더이상 수입 자동차를 구매할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중국은 자국 업체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른바 '국뽕'으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죠.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던 포르쉐의 경우 최근 포르쉐 중국법인의 정규직을 10%를 감원하고 외주인력도 30% 해고했습니다. 중국 내 매장수도 100여 개로 축소할 계획이라고 하고요.
전기차 부진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업체들도 줄줄이 나오고 있는 데요. 캐나다 전기버스 제조업체 라이언 일렉트릭은 비용 절감을 위해 미국 일리노이주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직원 약 400명을 일시 해고하기로 했고요.
크라이슬러·피아트·푸조·지프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4위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도 내년 1월 5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의 전기차 공장 가동을 중단합니다. 스텔란티스의 경우 중국 시장에서의 전기차 실적 부진과 북미 시장의 수요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사임하기도 했죠. 미국의 포드 역시 2027년 말까지 유럽·영국 인력을 4000명 줄이겠다고 지난달 발표했습니다.
100년이 넘는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온 업체들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과거 품질문제로 굴욕을 겪었던 현대차·기아가 전세계에서 3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파는 업체가 될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처럼 말이죠.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시장에서도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미국 전기차 시장 2위에 올라있습니다.
무섭게 성장한 BYD는 포드, 혼다, 지리차 등을 제치고 올해 연간 전세계 자동차 판매 7위에 오를 것으로 확실시되는데요. 10위권 내에 오로지 전기차로만 승부하는 업체는 BYD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시장 재편'이 가시화되는 모습입니다.
100여년 전 포드라는 천둥벌거숭이가 등장해 자동차를 쿠키 찍어내듯 찍어낸다고 했을 때 이런 분위기였을까요. 100년 역사를 뒤로하고, 다시 쓰일 자동차 역사의 핵심 문구가 지금 이 순간일 수도 있으니, 흥미를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