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보다 돈?’ 아스날 암흑기 자초하나
이적시장서 소극적인 행보, 지출보다 수입이 많아
벵거 감독의 지도력은 이미 한계에 봉착
암흑기의 시작일까. 매년 위기설에 시달렸던 아스날에게 올 시즌은 심상치 않은 징조가 너무 많다.
아스날은 2016-17시즌 리그 5위에 머무르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좌절됐다. FA컵 우승으로는 팬들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울 수 없었다. 특히 빅클럽이라면 리그 우승 혹은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좋은 성적이 우선시 된다.
하지만 아스날은 2003-04시즌 이후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으며, 챔피언스리그도 정상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항상 똑같은 이야기(same old story)’에 아스날 팬들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급기야 ‘벵거 아웃(Wenger Out)’을 외치는 목소리가 런던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그럼에도 과거의 실수를 개선되지 않은 채 무한 반복의 연속이었다.
이에 그동안 아스날에 기여한 벵거 감독의 공로를 크게 인정하지만 이젠 작별해야 할 시간이라는 게 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아스날의 최대 주주 스탄 크론케는 올 여름 계약 만료를 앞둔 벵거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고, 결국 2년 연장에 합의했다. 이는 팬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처사였다.
아스날은 올 시즌 유로파리그로 밀려난 상황이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여름 이적시장에서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상적인 행보다.
시작은 비교적 순탄대로였다. 세아드 콜라시냑은 자유 계약으로 아스날 유니폼을 갈아입은데 이어 리옹의 재능 있는 스트라이커 알렉상드르 라카제트가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했다.
그러나 두 명을 영입한 이후 아스날의 오프 시즌은 예상외로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여름 내내 연결되던 AS 모나코 윙어 토마 르마 영입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오히려 벵거 감독은 비대해진 1군 스쿼드 규모를 줄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선수 방출에 힘을 기울였다.
아스날은 레스터 시티와의 리그 1라운드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챙기긴 했지만 이후 벌어진 스토크 시티(0-1패), 리버풀(0-4패)전에서 연달아 무너지며 좌절을 맛봤다. 이 두 경기 패배는 아스날의 현재와 미래를 나타낸 것과 다름없었다.
벵거 감독은 여전히 고집스러운 브리티시 코어를 중용했으며, 이해하기 힘든 라인업 구성으로 팬들과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아스날의 전설 티에리 앙리, 리 딕슨, 이안 라이트도 실망감을 표출하는 등 비판 세례에 동참했다.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방법은 선수 영입뿐이었다. 하지만 끝내 추가 영입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을 리버풀로 이적 시켰다.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싶은 체임벌린의 요구와 계약 만료 1년을 남긴 시점에서 이적료를 챙기기 위한 아스날 구단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아스날을 떠나고 싶은 선수는 체임벌린뿐만 아니었다. 시코드란 무스타피, 알렉시스 산체스도 이적을 요청한 것이다. 비록 두 명 모두 팀에 잔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찝찝한 뒷맛을 남긴 채 이적 시장은 종료됐다.
사실 아스날은 이적 시장 마감 하루를 앞두고 다시 한 번 르마 영입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정작 르마는 아스날 이적을 거부하고 나섰다. 아스날은 올 시즌 유로파 리그에 출전하는 팀으로 전락했다. 이제 아스날은 더 이상 매력적인 행선지가 아니다. 또, 벵거 감독 역시 시대에 뒤쳐지며 예전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아스날은 르마를 비롯해 율리안 드락슬러, 로스 바클리, 아드리앙 라비오 등 여러 명의 선수에게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버 페이를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영입을 성사시켰어야 했지만 ‘안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그릇된 생각 탓일까. 아스날은 끝내 두둑한 지갑을 열기를 꺼려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아스날은 이번 오프 시즌 동안 선수 영입을 통한 지출보다 수입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라카제트 영입을 위해 5300만 파운드를 쓰고, 여러 명의 선수를 정리하느라 총 6700만 파운드를 벌어들였다.
올 여름 흑자를 기록한 팀은 겨우 5개(아스날, 스완지, 번리, 스토크, 토트넘)에 불과하다. 대다수 팀들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전력 보강을 위해 모험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는 상황이지만 아스날은 그렇지 못했다.
물론 무분별하게 돈을 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아스날은 지난 세월 동안 저비용 고효율 정책으로 리그 우승에 근접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과연 아스날이 우승에 대한 욕심이 있는 팀인지 의문스럽다. 이반 가지디스 단장과 벵거 감독은 공공연히 언론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대한 목표를 강조했지만 정작 언행일치가 이뤄진 적은 없었다. 이적 시장에서 소극적인 행보가 대표적인 예다.
아스날은 돈이 없는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한지 오래다. 새 경기장 건설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을 극복하고 지난 2013년 장기부채를 해결한 바 있다. 심지어 아스날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비싼 시즌권을 판매 중이고, 지난 2016-17시즌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가운데 주급 지출액이 세 번째로 높은 팀이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항상 제 자리 걸음에 머물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비전마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한물간 벵거 감독과 계약 연장을 하는 것이 아스날의 현 주소다.
그동안 벵거 감독이 변화에 인색한 것만은 아니었다. 패트릭 비에이라와 같은 강인한 미드필더 대신 기술적 색채를 더한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팀을 리빌딩했고, 에이스들의 연이은 이탈에도 불구하고 능수능란한 대응력을 선보이며 챔스존을 수성했다.
기존의 외국인 선수 정책 대신 브리티시 코어로 하여금 팀의 기조를 바꿨으며, 강팀을 상대로는 이따금 실리적인 경기 운영으로 승리를 쟁취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 시즌 전반기 알렉시스 산체스를 중심으로 펄스 나인 전술을 구사했고, 후반기 들어 20년 넘게 사용한 포백을 버리는 대신 스리백으로 변화를 꾀하며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효과만 거뒀을 뿐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성공보다는 실패작이 많았다.
리그 무관은 어느덧 13년째다.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벵거의 스리백 전술은 올 시즌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이제 벵거 감독이 꺼내들 비책은 남아있을까. 아스날 수뇌부들은 우승보다 돈에 더욱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이다. 암흑기가 도래하느냐 다시 재도약이냐. 총체적 난국에 빠진 아스날의 올 시즌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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