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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화장실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입력 2018.06.02 05:00 수정 2018.06.02 05:04        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알쓸신잡-스웨덴⓸’ 성 평등의 다른 표현 ‘성 중립 화장실

‘구분’을 통한 배려가 아닌 ‘사람’이라는 젠더 해방의 상징

스톡홀름 북쪽 시그투나라는 도시의 박물관에 있는 화장실 표시. 왼쪽부터 여성과 남성, 그리고 중립성 소유자와 장애인의 표시가 함께 있는 화장실 표시다. (사진 = 이석원)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의 참혹한 기억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 ‘여성 혐오 범죄’라는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그 사건 이후 공중 화장실의 남녀 구분의 요구가 빗발쳤다.

남녀 구분이 이뤄지지 않은 화장실은 성범죄의 위험이 실재한다. 특히 그것이 강남역과 같은 유흥지대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과거 신촌 술집의 상당수가 남녀 구분이 이뤄지지 않은 열악한 화장실이었고, 여성들은 그런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이 두려웠던 기억 하나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현재의 한국 사회는 젠더 범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도 화장실의 남녀 구분은 필수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조금 더 확대해서 생각하면, 남녀 구분이 안된 화장실은 다분히 남성 본위의 공공 서비스이고, 여성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반여성성으로까지 인식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스웨덴은 남녀 구분이 없는 화장실이 오히려 ‘젠더 해방’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의도적인 구분 자체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 가장 어리둥절해지는 것 중 하나가 카페든 식당이든, 백화점이나 은행에 가도 화장실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장실 문에는 남녀를 상징하는 표시가 함께 있고, 심지어는 장애인 표사까지 같이 있다. 그리고 어떤 곳에는 여성의 표시인지 남성의 표시인지 알 수 없는 표시가 함께 있기도 하다.

화장실 앞에 서 있는 줄을 봐도 그렇다. 줄에는 남녀가 섞여 있다. 그저 화장실의 문이 열리면 순서대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화장실 문이 열렸을 때 여성이 나오면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렇다. 스웨덴의 화장실들은 거의 대부분 남녀 공용이다. 심지어는 장애인까지도 함께 사용한다.

그럼 스웨덴은 왜? 스웨덴의 그런 화장실은 단순히 ‘남녀 공용 화장실’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이 같은 화장실들을 일컫는 말은 ‘Gender neutral restroom’ 즉 ‘성 중립 화장실’이다.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녀라는 이분법적 성 정체성을 지니지 않은 ‘중립 성 소유자’들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겉모습은 남성이지만 성 정체성은 여성인 경우 그는 남성 화장실을 들어가야 하지만 그건 여성이 남성 화장실을 들어가는 것과 같은 거북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용과 여성용, 그리고 별도의 중성용 화장실을 만들어놓는다는 것은 배려라기보다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 세상 사람들 중에는 중립 성 소유자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는 이들보다 편견이 심한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게 하되 내부에는 장애인을 위한 안전이나 편의 시설을 갖추는 것도 스웨덴 화장실이 가지는 또 다른 차별 반대인 것이다.

화장실에 남녀 표시가 없고, 남녀 화장실이 구분되지 않는 것에 대해 스웨덴 사람들은 대체로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성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성 범죄를 예방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중립 성 소유자-우리는 보통 동성애자를 포함해 성 소수자라고 표현하는-에 대해 관대하다. 아니 사실은 관대하다는 표현도 이분법적 성 구분자들의 화법이겠지만, 아무튼 의학적 트랜스젠더(Trans-Gender)나 심리학적 이중 성 소유자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제공하는 나라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스웨덴 사람들이 중립 성 소유자에 대해 보편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성애자에게는 보다 일반적 시선을 보내지만 중립 성 소유자에게는 극도의 부정적 시선이 많다.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던 스웨덴 소설 ‘밀레니엄’에도 스웨덴 사회의 그 같은 보수적 성 정체성 인식이 표현되기도 한다.

다시 화장실 문제로 돌아와서. 일부 동성애자는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을 출입하는데 아무런 심리적 부담감이 없다. 본인의 성 정체성이 중립이거나 이중적인 것이 아닌 이들의 경우다. 남녀가 구분된 화장실 사용을 강요당하는 중립 성 소유자에 대한 배려는 “내가 특별히 너를 생각해서 너만의 공간을 만들어 줄게”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그들을 고립시키고 사회로 수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선을 긋고, 구분 지으며 또 다른 차별로 고립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 중립 화장실’이라는 개념이 스웨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최근 이와 같은 움직임이 사회적으로 일고 있고, 캐나다와 다른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성 중립 화장실’을 넓히고 있다. 다만 스웨덴은 그 비중이 높고, 국가 차원에서의 인식이 확고해 일반 시민들에게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배려’라고 말하며 행하는 것들이 사실은 또 다른 차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다르다는 전제로 ‘구분’해서 차별했던 오랜 시간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성이기는 한데, 어쩌면 그 또한 ‘너는 나보다 상황이, 형편이 좋지 못하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여성을, 또는 장애인을 남성인, 또는 비장애인인 내가 ‘보호’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만의 발로일 수도 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강남역 화장실 묻지마 살인사건이나 화장실 몰카, 화장실 성폭행 등을 겪은 공포감이 당분간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한 이해를 넓힐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러나 중립 성 소유자나 장애인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차별을 하기 보다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좀 더 혁명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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