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북한과 '통'하러 왔나 한국 '불통' 우려해 왔나

美, 대선 앞두고 '한반도 정세관리' 나선 듯

어떤 대북 메시지 내놓을지 주목돼

韓 '대북 과속' 우려해 방한했을 가능성도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7일 북한이 북미대화 재개 의사가 없다는 점을 거듭 밝힌 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일행이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미국의 북핵 협상 수석대표이기도 한 비건 부장관이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 이후 첫 번째 방문 국가로 한국을 택했다는 점에서 방한 배경에 이목에 쏠린다.

외교부에 따르면 비건 부장관은 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조세영 1차관과 제8차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갖는다.

이번 전략대화는 비건 부장관 취임 이후 한미 양국이 처음으로 갖는 대면회의로,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미국이 추진 의사를 밝힌 G11(세계 주요 11개국) 확대방안 △중국을 배제한 경제공동체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비건 부장관은 같은 날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도 진행한다. 해당 협의 이후 약식 브리핑을 갖기로 해 어떤 형태로든 대북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 관리를 주요 치적으로 내세워온 만큼, 한반도 정세관리 차원에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거듭 피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오른쪽부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대북 메시지 주목되는 가운데
北에 대화복귀 '당근'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

일각에선 비건 부장관이 북미대화 재개라는 원론적 입장을 넘어 북한이 솔깃해할 만한 '당근'까지 제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 결렬 당시 북한에 요구했던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α)'와 관련해 '+α'의 구체적 대안들을 북한에 제시하며 대화 복귀를 촉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 국무부가 비건 부장관 방한 일정을 공개하며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목표를 재확인 한 만큼, '영변+α'라는 기존 협상 틀은 유지하되 '+α' 부분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다.

북한이 수용할 만 한 '+α'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핵 물질 반출 △일부 핵시설 추가 사찰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북한이 불쾌감을 표해온 한미연합훈련 연기와 북한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코로나19 방역 관련 인도적 지원, 한국 집권세력이 추진 의사를 밝힌 한반도 종전선언 등도 '대북 카드'로 거론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새판 짜기'를 요구한 북한이 미국 측 제안에 호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다.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제재완화가 담보되지 않은 북미대화에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이 조금이라도 완화되지 않는 한 미국의 대화 진정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며 "미국 대선 판세와 코로나 확산세, 미중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합의 도출도 어렵고, 합의를 해봤자 이행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인적쇄신으로 韓 독자 대북노선 강화 예상되자
한미워킹그룹 등 대북공조 논의차 방한했을 가능성도

비건 부장관이 북한이 아닌 한국 상황관리를 위해 방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 정부가 외교안보 라인을 교체하며 독자적 대북정책 추진 의사를 노골화한 만큼, 한국 정부 '과속'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는 관측이다.

대통령 직속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정세현 수석부의장(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CBS 뉴스쇼'에 출연해 비건 부장관의 방한이 △한반도 정세파악 △한미워킹그룹 역할 조정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예고했던 대남 군사행동을 보류했다며 "미국도 총체적으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해야 될 책임자이기 때문에 한국 측이 어떻게 분석을 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러 오는 것이 '1차적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건 부장관이 북미 정상회담 관련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다는 일각의 예측에 대해 '북한 행동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전망'이라고 혹평하며 한미워킹그룹 논의가 비건 부장관 방한의 '2차적 목적'이자 '주목적'이라고 단언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한국에서 "금년 들어 미국이 남북관계를 너무 통제하는 거 아니냐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며 "(비건 부장관이) 워킹그룹을 완전히 해체하는 방안과 형태는 유지하되 운영 방식을 바꿔 한국 여론을 잠재우는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신임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이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을 진행하는 모습(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