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8.1% 고율관세 부과 잠정안 발표
中, EU산 대형 휘발유차 관세인상·돼지고기 반덤핑 조사 반격
다만 EU·中 마찰에 자국 피해 우려 일부 EU회원국 협상 요구
中도 조사후 고율관세 보복보다 협상 통한 유화책 쓸 가능성
중국과 유럽연합(EU)이 통상전쟁에 ‘돌입’했다. EU가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최대 48%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잠정 조치를 발표하며 포문을 열자, 중국이 득달같이 EU산 대형 휘발유차의 관세를 인상한데 이어 돼지고기와 돼지 부산물에 대한 반(反)덤핑 조사에 들어가는 등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상무부는 지난 6일 국내 돼지고기 및 돼지 부산물 산업을 대표해 중국축목업협회(축산협회)가 정식 제출한 반덤핑 조사 신청을 접수했다”며 “이날부터 원산지가 EU인 수입 돼지고기와 그 부산물을 대상으로 반덤핑 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공지했다고 중국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 등이 17일 보도했다.
반덤핑 조사 품목은 신선·냉장·냉동 돼지고기와 식용 분쇄육, 건조·훈연·염장 제품과 내장 등이다. 상무부는 “이번 조사는 통상적으로 오는 2025년 6월 17일에 끝나지만 특수한 상황이 생기면 6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스페인과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 등 EU에서 조사대상 돼지고기와 그 부산물을 모두 133만 6500t(32억 7600만 달러·약 4조 5000억원)가량 수입했다. 중국에 전 세계에서 수입한 분량(약 270만 8100만t·64억 1000만 달러)의 절반 정도에 이른다.
중국이 EU 회원국 가운데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는 스페인(15억 달러)과 네덜란드(5억 5900만 달러), 덴마크(5억 5610만 달러), 프랑스(3억 5820만 달러) 등의 순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내장과 귀, 발 등 돼지고기 부산물을 잘 먹지 않는 반면 중국 소비자들은 이를 즐겨 먹는 만큼 대부분 수출된다.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은 이날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홈페이지에 게재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조사는 국내 관련산업 신청에 응해 시작됐고, 신청을 받은 조사기관이 중국 관련 법규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따라 신청서를 심사했다"며 "신청이 반덤핑 조사 개시조건에 부합해 조사 시작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조사국은 이어 "각 이해당사자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조사결과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올로프 질 EU 집행위원회 무역담당 대변인은 "EU 산업계, 회원국들과 함께 조사절차를 면밀히 살펴보겠다"며 "조사가 WTO 규정을 준수하도록 적절히 개입할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옌스 에스켈룬드 중국 주재 EU 상공회의소 회장은 "관할권 내에서 (반덤핑) 조사에 똑같이 대응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며 ”EU의 전기차 관련 조사를 고려할 때 그리 놀랍지 않다"고 거들었다.
지난해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反)보조금 조사를 진행해 온 EU는 12일 17.4~38.1%의 추가 관세를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한다는 내용의 잠정안을 공개했다.
EU 행정부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날 집행위원단 주간회의가 끝난 직후 조사에 협조한 중국 전기차 업체에 평균 21%의 상계관세를 잠정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중국 당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EU는 비야디(比亞迪·BYD)와 지리(吉利·Geely), 상하이(上海)자동차(SAIC)에는 각각 17.4%와 20%, 38.1%의 개별 관세율을 별도로 정했다.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나머지 중국 전기차 업체에는 일괄적으로 38.1%의 관세율을 부과할 계획이다. 더욱이 현재 중국산 전기차에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10% 관세에 그대로 얹어진다. 이 경우 실제로 매겨지는 관세는 27.4~48.1%에 이른다. 상계관세란 수출국이 상품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경우 수입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보조금에 준해 추가로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중국 정부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중국중앙(CC)TV 모회사인 중앙방송총국은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微博·중국판 X) 계정인 위위안탄톈(玉淵譚天)에서 "중국이 엔진 배기량 2.5ℓ 이상 고배기량 휘발유 수입차량에 대한 임시 관세율 인상 절차를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업계가 정부에 고배기량 자동차 수입 관세를 (현 15%수준에서) 25%로 인상할 것을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승용차협회에 따르면 현재 유럽이 중국에 수출하는 고배기량 승용차 판매액은 연간 180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중국이 지난해 유럽에 수출한 전기차 판매액 115억 달러보다 많다. 위위안탄톈은 "중국이 관세율을 인상하면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럽 브랜드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이는 EU 자동차의 대중국 수출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의미"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의 반격 조치는 올 4월 개정된 중국 관세법은 특혜무역협정(PTA)을 체결한 시장이 고율관세를 부과할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상대국 상품에 동등한 관세를 부과하도록 규정한데 따른 것이다. 해당 규정은 오는 12월1일 시행된다.
컨설팅기업 로모션의 윌 로버츠 자동차 수석연구원은 로이터에 “관세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유럽과의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는 중국이 주도하는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지역에 치명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측이 반덤핑 조사를 통해 즉각 고율관세로 보복에 나서기보다는 협상을 통한 유화책을 쓸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중국 입장에서 유럽은 미·중 기술패권 다툼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추인 만큼 극단적인 ‘보복수단’ 대신 협상에 주력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이 EU가 '관세폭탄'을 발표한 뒤 외교부·상무부와 기업단체 등을 총동원해 EU를 비판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의 가능성이 있다며 여지를 남겨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당국과 관영매체는 이번 조치가 서방 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럽 내 전기차 소비자 가격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테슬라 등 중국에 투자한 서방 기업들도 이번 조치로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엄포만 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EU는 내달 4일부터 임시로 관세를 적용하지만 이 조치가 확정되려면 11월까지 27개 회원국 투표에서 가결돼야 한다. 중국으로서는 아직 여론전의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중국의 우방인 헝가리의 경우 EU의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에 대한 규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측면 지원하고 있다.
EU와 중국의 통상전쟁으로 자국 산업 피해를 우려하는 일부 EU 회원국들은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가 주력 산업인 독일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잠정 추가관세 발효 전에 중국과 합의할 여지가 있고, 이에 동조하는 다른 EU 회원국들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양측이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커 비싱 독일 교통부 장관은 EU 집행위원회의 추가관세 발표 이후 X에 올린 글에서 "이 보복관세는 독일 기업과 이들의 최고 제품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에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스페인은 중국의 돼지고기 반덤핑 조사에 대해 중국과 협상해 관세가 부과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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