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설 등 4개 국유은행에 103조원 규모 공적자금 긴급 투입
투입 규모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53조)보다 2배가량 많아
경기 침체와 부동산 위기 심화로 국유은행 자본비율 대폭 하락
美와 관세전쟁의 여파에 따른 추가 금리인하에 필요한 ‘실탄용’
중국이 4개 국유은행에 대규모 공적 자금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중국의 끝모를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의 위기 심화로 은행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백기사’(우호세력)를 자처하며 나선 것이다.
중국건설(建設)은행과 중국(中國)은행, 중국우정저축(郵政貯蓄)은행, 교통(交通)은행은 중국 본토 상장 주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모두 5200억 위안(약 103조 4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이같이 거대한 규모의 공적자금을 금융권에 투입한 것은 1998년 발생한 아시아 외환위기 때 2700억 위안을 지원한 이후 처음이다. 건설은행과 중국은행, 우정저축은행, 건설은행 등 4개 국유은행은 앞서 30일 이사회를 열고 재정부 등 정부부처와 국유기업을 대상으로 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A주(중국본토 주식) 발행을 승인했다.
중국은행(유상증자 규모 1650억 위안)과 우정저축은행(1300억 위안), 교통은행(1200억 위안), 건설은행(1050억 위안)은 이날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유상증자 계획을 각각 공시했다. 유상증자 배정 대상은 중국 재정부를 비롯해 중국연초(煙草)총공사, 중국이동(移動)통신(China mobile), 중국선박(船舶)그룹 등 대형 국유기업들이다. 재정부는 이번 유상증자의 최대 투자자가 돼 주식을 전량 매입한다.
주식 매입자금은 재정부가 발행하는 초장기 특별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할 방침이다.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이 발간하는 상해증권보(上海證券報)는 “승수 효과를 8배로 감안한다면 5200억 위안의 증자는 4조 위안 이상의 신용증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대 투자자로 나서는 재정부는 유상증자액 5200억 위안 가운데 5000억 위안을 떠안을 방침이라고 경제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이 전했다. 이에 따라 건설은행 발행하는 새 주식은 재정부가 모두 현금으로 인수한다.
중국은행 역시 재정부가 전액 부담한다. 우정저축은행은 재정부가 대부분을 부담하며 중국이동, 중국선박 등 국유기업들이 힘을 보탠다. 교통은행도 재정부가 대부분을 부담하고 중국연초, 중국연초 계열사인 솽웨이(雙維)투자 등 국유기업들도 일부 참여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정저축은행은 주당 6.32위안에 205억 7000만주를 발행하고 재정부를 비롯해 중국이동, 중국선박이 신주를 인수한다. 재정부는 1175억 8000만 위안 규모의 신주를 인수하기로 했고 중국이동은 78억 5400만 위안, 중국선박은 45억 6600만 위안 규모의 신주를 각각 인수할 예정이다. 자본금 확충이 이뤄지면 재정부는 우정저축은행 전체 지분 15.54%를 확보하며, 우정저축은행은 지분이 종전 62.8%에서 52%로 낮아진다.
교통은행은 주당 8.71위안에 137억 7700만 신주를 발행한다. 재정부는 1124억 2000만 위안 규모의 신주를 매입한다. 중국연초는 45억 8000만 위안, 솽웨이투자는 30억 위안 규모의 신주를 각각 인수할 예정이다. 재정부는 교통은행 지분 23.9%를 이미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번 증자 참여를 통해 지분은 34.8%까지 늘어난다.
중국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은행들의 핵심 자본비율(보통주 자본비율)을 끌어올려 대출 여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자본확충으로 은행들이 영업을 확대할 수 있는 데다 우발 채무에 대한 리스크(위험) 관리 능력도 높아질 것이라는 게 중국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은행은 성명을 통해 “재정부의 전략적 투자는 국유자본 지출을 최적화하고 재정정책의 전달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자본을 사용해 국가전략의 실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이를 통해 은행이 국유자본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국유은행에 대한 지원 계획을 처음 밝혔다. 리윈쩌(李雲澤) 중국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은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은행별 맞춤 전략을 통해 대형 은행들의 자기자본을 확충하겠다”고 전했다. 랴오민(廖岷) 재정부 부부장도 “특별국채 방식으로 자본금을 투입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가 지난달 5~11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에서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직접 중국 주요 국유은행들의 자본확충을 위해 5000억 위안 규모의 특별국채를 발행하겠다고 밝히며 최종적으로 공식화했다.
왕졘(王劍) 궈신(國信)증권 금융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통신에 “이번 조치는 대형 국유은행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자본금 비율을 유지하고 신흥산업 지원과 금리인하에 따른 예대마진 하락 압력에 잘 대처하도록 함으로써 실물경제 지원 역량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국유은행의 자본 확충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이유는 은행들이 중국 경제체제를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비 진작을 위해 지속적인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며 대출을 유도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은행이 부동산 프로젝트에 대출을 늘리도록 지시해 개발업체의 줄도산을 막는 정책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내수부진에 따른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은행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몇 년간 부동산발(發) 금융위기설이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지고, 지방채를 포함해 부실채권이 늘어난 탓이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부채는 무려 130조 위안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더해 부동산 시장 장기 침체로 인한 대출수요 급감,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등으로 중국 6대 국유은행의 자본 수준은 급격히 하락했다. 아직까지 기준요건을 충족하고 있지만, 국유은행들은 경기부양에 ‘강제 동원’되는 바람에 낮은 영업이익과 성장 둔화, 부실채권 증가 등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수익성의 척도인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말 기준 1.5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중국은행의 순이자마진은 1.40%, 교통은행은 1.27%로 떨어지는 등 국유은행의 수익성이 대폭 악화했다. 이익 하락 압력이 커진 가운데 대출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해 리스크 관리의 우려가 커진 것이다. 그나마 우정저축은행(1.87%)과 건설은행(1.51%)은 나은 편이다.
향후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할 때를 염두에 두고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을 높이려는 포석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올해 정책금리 등을 ‘적시에 인하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미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글로벌(S&P Global) 분석가들은 “중국 대형 국유은행들은 정책자금 대출을 통해 당국의 사회·경제 정책을 뒷받침한다”며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자본확충이) 관세 역풍 속에서 성장을 뒷받침할 자금의 가용성을 높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TV(CCTV)는 “장기적으로 고품질 발전을 이어나가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은행이 자본을 늘려 운영상 여유가 생기면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 추진도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인민은행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예고했지만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 은행 마진 축소 등을 이유로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 인하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르면 다음달 LPR 인하 또는 은행의 예금 적립 비중인 지급준비율(지준율·RRR) 인하 등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은 과거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에도 모두 2700억 위안의 특별 국채를 발행해 4대 국유은행에 자본을 투입한 적이 있다. 2003~2007년에는 국유 투자회사인 후이진(匯金)을 통해 중국공상(工商)은행·건설은행·중국은행·교통은행에 자본을 투입했다. 2010년에도 건설은행·중국은행·교통은행 등이 자본을 확충한 바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