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이재용에 징역 5년·벌금 5억 구형
재계 "과한 구형, 韓 경제 악영향"…사법리스크 벗고 '뉴삼성' 가동 관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항소심 선고가 3일 내려진다.
재계는 이날 선고에서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될지 주목한다. 1심 판결과 동일하게 무죄 선고를 받거나, 적어도 집행유예가 나오게 되면 삼성은 그간 발이 묶였던 '뉴삼성'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실형 판결이 나올 경우 또 다시 경영 활동이 멈추게 돼 삼성 뿐 아니라 한국 경제 성장 동력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檢 "이재용 등, 경제 정의와 자본시장 근간 이루는 헌법적 가치 훼손"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이날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사건 선고 공판을 연다.
이 회장 혐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이 과정에서 벌인 업무상 배임, 분식 회계에 관한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등으로 나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하고, 회계부정·부정거래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며 2020년 9월 기소했다. 삼성물산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게 검찰측 판단이다. 삼성물산 이사들이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은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됐다.
이 회장 등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합병 이후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4조5000억원 상당의 자산을 과다 계상했다고 의심한다. 두 사건은 병합됐다.
지난해 11월 25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자본 시장의 근간 훼손, 주주 기망 등을 주장하며 이 회장에게 1심 구형량과 같은 징역 5년·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3년, 벌금 1억원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최종 의견진술에서 “피고인들은 이재용의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정보 비대칭상황 악용했다”면서 “피고인들이 훼손한 것은 우리 경제 정의와 자본시장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가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는 것이 국익을 위하는 것이라고 주주들을 기망했지만, 합병 찬성 결과는 국익 아닌 특정 개인 이익과 투자자 다수의 불이익이었다”면서 “이 사건 판결은 향후 기업구조 개편 및 회계처리 방향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 합병은 합리적 경영 판단 주장…이재용 "사익 추구 없어"
삼성은 이 같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다고 반박한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져 문제가 없으며, 삼성물산이 당시 3조원이 넘는 부실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합병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승계와 연관된 내용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결심공판 최후 진술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추진을 보고받고 두 회사의 미래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거나 투자자를 속인다거나 하는 그런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삼성에 대한 국민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금 저희가 맞이하는 현실은 그 어느 때 보다 녹록치 않다.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겠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면서 "부디 저의 소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길었던 양측의 공방이 3일 일단락을 짓게 되면서 이날을 계기로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해소될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재계는 1심 당시 구형한 것과 동일하게 2심을 구형한 것에 주목한다. 새로운 증거나 법리적 근거가 추가된 게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최종 의견진술 역시 1심 때와 크게 변한 게 없는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찾아낸 게 있다면 구형을 더 늘렸을 텐데 동일 형량이라는 건 검찰이 내세울 게 1심 때와 다른 게 없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두 회사 합벼이 이 회장 승계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당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돼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DS) 사업부문은 안팎에서 조직 문화 혁신, 본질적 경쟁력 확보에 대한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은 지난 10월 삼성전자 3분기 잠정실적 발표 당시 "근원적 기술 경쟁력 회복, 미래 준비, 조직문화 재건"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DS 부문에서 15조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23조원의 영업흑자를 낸 SK하이닉스에 크게 밀리며 자존심을 구겼다.
본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올해 업황도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미·중 갈등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 속 관세, 고환율, 고물가 등 각종 악재 소식만 들려온다. 그 사이 세를 불린 노조는 회사를 연일 압박하고 있어 삼성은 말그대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재계 "과한 구형, 韓 경제 악영향"…사법리스크 벗고 '뉴삼성' 가동 관심
이런 상황에서는 총수의 과감하고도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 데,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 해소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삼성 위기론'으로 번지고 있다. 삼성의 반도체·AI 등 투자 결정이 제 때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
실제 이 회장이 2022년 10월 회장으로 취임한 뒤 '뉴삼성' 메시지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공격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할 때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사업리스크에 매인 탓에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면 삼성은 혁신과 변화에 방점을 두고 '뉴삼성' 경영 전략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TSMC 등 반도체 경쟁자들이 조 단위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쇄신과 도약을 위해 이 회장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거나 하만 이후 멈춘 대형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유죄 판결이 나오게 되면 이 회장의 경영 활동은 또 다시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상고심까지 고려하면 2~3년 더 삼성이 안갯속을 걷게 된다는 의미다. 조직을 이끌 리더십이 가장 필요한 때 총수 부재라는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확산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