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환 전 MBC노동조합 비대위원장 3일 글 올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11기생들이 만들었다. 영남 출신들이 중심이었지만 성적 우수자는 타 지역 출신도 집요하게 설득해 영입했다. 그리고 회원들끼리 직책을 세습하면서 강력한 군내 권력집단으로 성장했다. 수방사 경비단장, 보안사 지구대장 등 핵심요직의 장교들이 대부분 하나회 소속이었다
하나회도 처음에는 애국심을 내세웠다. 가입 선서 첫 문장이 “국가와 군에 충성을 다하라”였다. 그러나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1979년 12월 12일 밤 하나회 소속 박희도 1공수여단장은 국방부를 무력 점령했고, 구창회 9사단 참모장은 3군사령관에게 병력 출동을 안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군에 하나회가 있었다면, 사법부에는 우리법연구회(후신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있다고들 말한다. 우리법연구회는 1989년 박시환 강금실 등이 만들었다. 출범할 때 ‘사법부의 독립’을 내걸었는데, 지금은 ‘사법부의 정치 종속’으로 비판받는 게 아이러니하다.
우리법연구회가 2010년 해체된 뒤 다음해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만들어졌다. 초대 회장이 김명수였다. 두 단체를 합해 역대 회원이 500명 정도로 알려졌다. 그동안 법원을 떠난 이들도 많으니, 지금은 전체 판사 3,200명 가운데 약 10%가 회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 소수의 우리법연구회 회원들이 사법부 요직 곳곳에 포진해 있다. 문재인 정권 때 김명수를 대법원장에 기용한 게 계기였다고 한다. 한때 대법관 14명 중 7명,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우리법(인권법) 출신이었다. 지금도 대법관 14명 중 5명, 헌법재판관 8명 중 3명이 거기 회원이다. 마은혁이 헌법재판관이 되면 한 명 더 추가된다.
그밖에 정치적 사건들에 수시로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등장한다. 온갖 불법 논란을 일으키며 윤석열 대통령을 연행한 오동운 공수처장이 인권법, 체포영장에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써준 이순형 부장판사가 우리법 회원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김동현 부장판사는 인권법 회장 출신이다.
요즘은 언론도 피고인도 재판부가 결정되면 혹시 어느 연구회 소속인지부터 찾아본다. 판사의 이념에 따라 유무죄까지 좌우된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이다. 그렇게 사법부 신뢰를 갉아먹는 우리법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다시 하나회로 돌아가 보자.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11일째인 1993년 3월 8일 아침 권영해 국방장관을 불러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두 사람에게 전화로 해임을 통보하고 즉시 후임자를 임명했다. 4월 2일 국방부 장성회의에서 특전사령관과 수방사령관 경질을 발표하고, 4월 8일 2군사령관과 1군사령관, 4월 15일 군단장 4명과 사단장 8명을 교체했다.
전광석화같은 인사조치에 서슬 퍼렇던 하나회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무너졌다. 경질된 하나회 장성들이 모두 군을 떠난 것은 아니다. 다만 권력을 넘볼 수 없는 한직으로 발령했다.
사법부도 이처럼 기형적 인사구도를 스스로 해소할 길이 있다고 믿는다. 기득권자들의 저항을 이겨낼 의지만 있다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법부가 스스로 개혁을 이뤄내야만 국민 저항권이 필요한 상황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