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인용 후 경제 불안 여전…시장 불확실성 확대
정책 공백 장기화 우려 속 소비·투자·수출 지표 전방위 부진
2017년과 달라진 대내외 여건...“경제체력 고갈 우려 커져”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정국 혼란은 일단락됐지만 경제를 둘러싼 불안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국정의 중심축이 사라지며 컨트롤타워 공백 장기화 우려가 산업계 안팎에서 커지는 분위기다. 정책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대외 여건은 오히려 더 악화하고 있어서다.
4일 경제계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 인용은 시장 예측 범위 안에 있었지만 이후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대응 여력이 위축된 가운데 글로벌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실물경제 전반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 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인용했다. 오전 11시 결정문 낭독 직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30원대 초반까지 떨어지며 변동성이 급격하게 확대됐다. 전 거래일 종가(1467원) 대비 30원 이상 급락한 수치다.
미국 상호관세 여파로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인 상황에서 윤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당장의 급등세는 진정됐지만 환율 안정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론 분열 우려와 통상 압박이 이어지는 만큼 또 다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대내 정치 불안 잔존과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등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 관세 위협이 국내 경기 하방리스크를 부각시켰다”며 “정치 불안 해소로 환율 하락폭이 확대돼 여타 통화와 키를 맞출 수 있지만, 대외 달러 반등 조짐이 보이고 있어 단기적인 흐름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고환율 여파에 따른 수입 원가 상승은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돼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 3월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대비 3.6% 상승했고 외식 물가도 3.0% 올랐다. 정부는 농축수산물 할인과 할당관세 확대 등을 내놨지만 대형 식품업체들이 정부 개입 없이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선 영향이다.
정책 공백 속 체감 경기도 더욱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3% 줄었고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도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최대폭 감소를 기록했다. 전기차 보조금 조기 발표와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등 일회성 요인으로 전월 대비로는 1.5% 증가했지만 이를 내수 회복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서비스업 중 내수와 밀접한 숙박·음식점업 생산은 전월보다 3% 줄었는데 이는 2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투자의 선행 지표 성격인 국내기계수주(전년 동월 대비 -7.4%)와 건설수주(전년 동월 대비 –6.9%) 역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출도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분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줄었고 반도체·IT 중심의 회복세도 둔화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 25%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통상 압박도 심화되고 있다. 교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 전반에 부담이 커지는 양상이다.
탄핵 인용 국면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안정적인 환율 흐름이 경제 충격을 흡수했다. 2017년 상반기 수출 증가율은 15.8%에 달했고 기업 영업이익률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부진하고 물가와 환율까지 불안정한 삼중고 양상이다. 정책 공백이 길어질수록 충격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영국 민간연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0%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CE는 “탄핵이 인용돼 정치가 안정되고 금리 인하, 수출 개선이 이뤄져도 정부 지출 둔화와 부동산·내수시장 침체 등이 낮은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계는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과 대외 전략 정비, 물가·환율 대응 등 거시정책을 신속히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권 이양기에 따른 정책 공백을 최소화하고 예측 가능한 비상경제 리더십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한 상황에서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위축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까지 겹쳤다”며 “경제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 실기하면 회복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